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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삶과 사랑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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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만나기 전에 그대를 만나기 전에 안도현 그대를 만나기 전에 나는 빈 들판을 떠돌다 밤이면 눕는 바람이었는지도 몰라 그대를 만나기 전에 나는 긴 날을 혼자 서서 울던 풀잎이었는지도 몰라 그대를 만나기 전에 나는 집도 절도 없이 가난한 어둠이었는지도 몰라 그대를 만나기 전에 나는 바람도 풀잎도 어둠도 그 아무것도 아니었는지도 몰라 . . . 내 눈이 그를 맞던 어느 날, 세상 사면엔 온통 빛이 몽글거리며 부서져 흐르고 있었다. 그 빛에 가로막혀 아무 것도 구별할 수 없는 순간들은 영원처럼 이어졌다. 지금 큰밥돌과 작은밥돌로 우뚝 선 그들~ 그래도 내가 그들은 만나기 전엔 난 정말 그 무엇도 아니었는지도 몰라~
레테 레테는 '망각의 강'이다. 그리스 신화에는 세 가지 레테가 등장한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진 레테가 바로 저승 앞을 흐르는 레테. 그야말로 망각의 강이다. 저승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이 강을 건너야 한다. 강을 건너면 이승의 기억은 다 사라진다. 또 하나의 레테는 잠의 신 동굴 속에 있다. 정적 뿐인 이곳엔 레테만이 흐른다. 마지막 레테. 망각의 강을 건너고도 이승의 기억을 뱉어내지 못한 영혼을 위한 레테의 의자다. 저승신 앞에 있는 이 의자에 앉으면 이승의 기억은 더이상 영혼을 괴롭히지 않는다. 살다보면,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있다. 그것이 나로 인한 것이든, 다른 사람이 안겨준 고통이든 온전하게 다 지우고 싶은데, 어느 순간 폭풍처럼 떠올라 머리 끝을 세운다. 나이 들수록 좀전 일은 잊기 ..
꽃밭의 독백 나는 네 닫힌 문에 기대 섰을 뿐이다.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벼락과 해일만이 길일지라도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 서정주, '꽃밭의 독백' 중 - 하고픈 것 많은 가을날. 산뜻한 차림으로 출근해서 모니터 바라보기, 내 20평 꿈터에 입장하기 전 마시는 모닝 커피, 아침부터 오후까지 계속되는 재잘거림, 늘 뛰어다니던 낡은 계단과 복도, 아름다운 사람들과의 즐거운 저녁 자리. 왜 다 금지된 것들만 하고 싶을까~ 조금은 덜어놓고 왔다고 여겼던 무언가가 익어 여무는 가을따라 되살아난다. 해야 할 일 하나가 생각났다. 기호가 캠프에서 돌아오면 짬뽕을 만들어주기로 했는데, 어설픈 솜씨로 연습이나 해 볼까. 그런데, 그러다가 맵고 뜨거운 국물에 내 가슴까지 뜨거워져서 뭔가가 또 그리워지면 ..
장밋빛 인생 내 시선을 내리깔게 하는 눈동자 입술에 사라지는 미소 이것이 나를 사로잡은 그의 모습이에요. 그가 나를 안고 가만히 속삭일 때 내게는 장미빛으로 보이지요. 그가 내게 사랑의 말을 할 때는 같은 말이라도 언제나 나는 황홀함을 느끼지요. 내 마음 속에 행복이 돌아온 거예요. 그 이유를 나는 잘 알고 있어요. 나를 위한 그, 그를 위한 나라고 그는 내게 말했고 맹세해 주었지요. 그를 보기만 해도 내 속에서는 맥박 치는 심장이 느껴져요. 끝없는 사랑의 밤은 행복에 넘쳐 슬픔은 사라져 버리죠. 그가 나를 안고 가만히 속삭일 때 내게 인생은 장미빛으로 보이지요. 이곳의 9월이 이렇게 더울 줄 몰랐다. 오스트리아에서 처음 맞는 가을, 아침 저녁으론 선선하지만 ..
가지 않은 길 가지 않은 길 프로스트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면,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면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
이별할 때 버려야 할 10가지 사랑했던 기억 다시 올 거라는 기대 내가 아니면 안될 거라는 자만 친구로라도 함께 하고픈 욕심 날 오래 기억해주길 바라는 이기심 다른 사람 만나지 않길 바라는 희망 함께하며 해주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 우연을 바라는 집착 널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인연 그리고, 내 마음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다시는 묻지 말자 내 마음을 지나 손짓하며 사라진 그것들을 저 세월들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는 법이 없다 고개를 꺾고 뒤돌아보는 새는 이미 죽은 새다. - 류시화,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중 - 내가 좋아하는 시의 한 부분이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시의 이 부분만을 좋아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지치고 힘들었던 시간들은 애써 돌아볼 필요가 없다. 볼 때마다 그 흔적이 도드라진다면 더욱더 그러하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힘겨웠던 시간들이나 사실 자체보다 그로인해 반복되는 불확실하고 무의미한 상상이다. 그러기에 진정한 위안은 자신만이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