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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숨은 그림 찾기

(33)
봄 걸어가볼까, 달음질해볼까. 돌아보지 말고 돌아서지도 말고. 이미 신화가 돼버린 아니 애당초 신화였을 뿐인, 심해의 냉랭함 견디고 있는 잃었던 사랑 찾아 눌러쥐고 있던 링거를 풀어놓고 가벼이 활활 날아가볼까. 홀씨처럼 풀풀 날아올라볼까.
눈 눈 속에 그가 누워있다. 짓누름에 지친 흰 각혈가루 맞으며 실루엣 하나로 나를 섭정한다. 응혈진 우리의 오후는 사무침으로 쓰러지고 그가 있던 곳엔 또 내가 있다.
친구에게 친구에게 가없던 우리들의 봄날을 넌 지금도 새싹처럼 기억하고 있을까 차들의 단내 나는 질주가 그치면 우리의 뜰엔 감미로운 미소가 떠다녔었는데 보도를 구르는 햇살은 때론 뜨신 아랫목이 되고 때론 슬픈 일기가 되고 또 때론 절절한 사랑도 되었었는데 지금은 폐선 같은 눈빛으로 엎질러진 영혼을 달래고 있을 너 봄날이 이만큼 걸어오고 있기에 다신 휘청이지 않기를 다시는 금을 밟지 않기를
12월 아침 12월 아침 가느다란 성에가 차창을 거닐고 있다 너의 오래고 낡은 장갑은 한참을 차창에 머물고 공기 섞는 네 몸짓에 지나는 한 사람 한적한 미소를 품는다 네가 앉은 유리 너머엔 부서진 유적 같은 안개가 떠돌고 소리 젖은 멜로디는 명멸하는 세월을 들려 주는데 달리는 네 시선, 우리의 봄빛 추녀를 엮는다 넌 알고 있을까. 저녁 향기 안고 들어설 널, 낮빛에서도 난 그리워하고 있음을 네가 사랑하는 나의 가슴은 이미 봄뜰을 날아다니고 있음을
창 그 때 그 안에 네가 있었지 불편한 평화와 소통없는 어휘와 낯선 그을음 앞에서 너는 꾹꾹 손금을 눌러접었다 네 슬픔만한 하루, 내 사랑만한 이틀... 시간이 가르쳐 준 건 돌아갈 수 없는 지난 자국들 기지개를 열고, 창을 열어도 남아 숨쉬는 건 애타는 눈길 쓰다듬던 내 사랑만치의 서러움
어느 날 어느 날 꽃을 던지고 싶었다 너를 태우고 싶었다 난 잠들고 싶었다.
미련 둘 미련 둘 여름 들길을 걷고 흰 바다를 유영하고 물든 산등성이 굽이쳐 다니다가 겨울 으스름달에 묻어 네가 왔다 애절한 네 고개는 어지런 꿈처럼 가누지 못하고 처연한 네 눈빛은 나의 빈 자리로만 흐르는데 쉼 없이 돌아섰던 네가 손 내밀면 난 다시 그 시린 손을 잡아야 할까 이미 조각난 심장 그러나 네 손 잡던 나를 놓아버리던 그 날처럼 너의 손길을 오려낼 수 있을까
가시 가시 손 끝에 파도가 인다. 뾰족한 생떼 같은 무심한 것이 깊숙이 들어 온몸이 해진다. 미처 알지 못했다. 내가 휘청이는 사이 네가 지켜야 할 슬픔을. 고작 가시도 아픈데, 네 가슴의 심연은 어떠하였으리. 미안하다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