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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숨은 그림 찾기

(33)
마중 마중 행여 그대 오려는 날 분홍빛 치장하고 붉은 마음 단장하고 집 앞 의자에 앉아 그대를 기다리네 빛살이 내리고 사람들은 문을 닫아걸어도 그대 흔적은 옷깃조차 없네 난 그 여린 의자에서 혼잣소리를 묻힐 듯 숨 뱉어내도 그대 소리는 발끝조차 없네
비 이 하늘 아래에도 비가 내린다. 그리움 크기만큼 모퉁이를 적신다. 나무 내음 짙던 그곳 놓인 잔에 흐르던 너의 사랑 창문 위를 걷던 비는 개울이 되고 바다가 되어 내 깊다란 숨을 적셨다. 비는 아직도 내린다. 여물어만가는 그리움을 들고 길다랗게 내 창을 적신다.
이유 이유 우리가 그때 거기서 왜 만났을까 그런 우연이 아니었으면 젖지도 주리지도 않았을 것을 그저 뒤를 스치는 이름 없는 숨결이었다면 에는 마음 자락 매달리지 않았을 것을 마주 서지 않았더라면 어두운 늪에 침잠하지 않았을 것을 그렇게 우린 만나지 않았어야 할 것을
지각 지각 그런 때가 있었다. 누구도 모르게 누군가가 흔들리고 있었다. 거칠게 헤매다 흰 몸짓을 드러내고 흰 웃음을 드러냈다. 그 몸짓에 그 웃음에 내 속 물기는 넘쳐 흘렀다. 마르지 않은 채 쌓여만 갔다. 뒤척인 가슴은 엉클어져 등 뒤로 숨었다. 그러는 사이 흰 몸짓이 떠나고 흰 웃음이 바스라지고 되돌아온 그 터 그 터에 있던 꽃문은 이제 없다. 꽃은 시들어 말랐고 녹이 난 문은 땅 속에 묻었다. 기다리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다 지나버렸다. 다 늦어버렸다.
숲 빛을 가르고 모르는 땅 아래 묻어둔 어느 줄기가 바람 타고 올라와 다 익은 이파리를 갉아놓는다. 난 또 심장을 놓은 채 머리를 헤쳐 풀고 이제는 지나버린 숲을 또 나신으로 더듬는다. 아무도 없는 숲에선 울어도 울어도 잊어도 잊어도 흔적은 그치지 않는다. 그가 만든 숲 그늘엔 찾아도 찾아도 작은 나신 가릴 줄기 하나 없다. 아파도 아파도 달래줄 이 하나 없다.
영원 영원 한때는 매일 뜨는 해가 있었고 푸른 한 나무가 있었다 어느땐가는 봄마다 피는 그 꽃도 보았다 하루하루의 해가 해마다의 푸른 한 나무 잎과 그 봄꽃이 모두 같은 해이고 같은 잎이고 같은 꽃이라 알았다 그러나 오늘 오르는 해는 어제와 다르고 지금 돋는 그 나무의 잎은 지난해의 잎이 아니다 사랑은 있지만 난 온전히 그에게 가지 못한다 사랑은 있지만 그의 사랑이 흐르는 곳은 더이상 내가 아니다 사랑은 있다 어느 사랑도 끝은 있다 그렇게 영원은 없다
독풀 독풀 머리가, 마음이 꺼진다 그가 내 속에 들어온 때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지만 누구도 그를 알아내지 못한다 색에 취하고 향기에 빠져 나는 자꾸만 혼미해지고 그러다 그를 깨달은 순간 나에게 감도는 그의 비소 무지한 나를, 오만한 나를
먼 바람 먼 바람 먼 길 내 시선 나무와 흙을 흔드는 내 세월보다 더 오랜 차 먼 바람 처음을 모르는 끝도 흩어진 내 마음보다 더 깊은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