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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16 후쿠오카

1. 15 (금) : 후쿠오카의 밤거리

2016년이 시작되자마자 감기에 걸려 며칠을 앓았고 감기가 거의 나을 무렵엔 기다렸다는듯 허리 통증이 찾아왔다.

힘든 2015년이 지나면서 긴장이 풀려서인지 아님 나이탓인지.

감기는 '감기약'이란 기특한 녀석이 2~3일만 제역할을 해주면 금세 백기를 던지는데, 요통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아래쪽 허리뿐만 아니라 다리까지 완벽하게 저려왔다.

3개월 넘게 병원을 다녔던 2002년의 통증, 바로 그것이 찾아온 것이었다.

 

물론 최근에도 약간의 요통이 발생한 적이 있긴 했지만, 잠시 온찜질을 하면 바로 물러가곤 했는데, 이번에 아니다.

밤낮으로 찜질팩을 허리 밑에 깔고 살기를 1주일, 후쿠오카 여행 출발 이틀 전에야 차도를 보였다.

여행 못 갈 팔자는 아니었나보네.

 

인천공항 주차장
공항 셔틀버스
인천공항

후쿠오카로 떠나는 1월 15일, 진에어 항공편 출발 시각은 17시 45분.

남편은 평상시처럼 아침에 출근을 했고, 아들녀석은 어제처럼 종로에 위치한 전공 관련 학원으로 향했다.

남아있는 녀석을 위한 반찬을 만들고 상점에서 김밥을 구입한 후, 12시 54분 발 지하철을 타기 위해 캐리어를 끌고 역으로 갔다.

그러나, 내 손목시계-왜 핸드폰을 안 보고-가 3분 늦게 세팅되어 있는 걸 알지 못한 덕에 바로 눈앞에서 지하철을 놓치고 말았다.

그리하여 예정보다 10분 늦게 남편 사무실 근처의 지하철 역 앞에서 남편 차에 올랐다.

 

이번엔 공항버스가 아닌 남편 차로 공항까지 이동한다. 올림픽도로는 한산했고 공항 가는 도로 역시 마찬가지였다.

14시 40분, 인천공항 장기주차장에 차를 세운 우리는 공항 내 셔틀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향했다.

진에어 체크인데스크엔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지만, 다행히 20분만에 탑승수속을 마쳤다.

 

미리 신청한 사이버환전으로 신한은행 인천공항 창구에서 엔화를 찾은 후엔 고픈 배를 달래려 김밥 몇 개를 집어먹었다.

속이 안 좋다는 남편은 김밥 대신 가루 소화제를 입 안에 털어넣었고, 우린 출국 검색대를 통과해 셔틀트레인을 타고 맨 끝

탑승구까지 이동했다. 사실 작년 1월 홍콩여행 출발시 시간에 쫓겨 공항을 미친듯이 뛰어다녔던 기억 때문에 이번엔 여유있게

움직였는데, 탑승구 앞에 앉아 시간을 확인하니 탑승시각까지 무려 1시간반이나 남아있다.

 

인천공항
후쿠오카 공항
후쿠오카 공항

후쿠오카 행 진에어 항공기는 어둑어둑해진 18시에야 이륙했다.

체크인 할 때 묵묵히 입을 닫고 있었더니, 좌석을 무려 거의 맨 뒤쪽으로 배정해 준 진에어 직원의 센스라니.

게다가 엔진소리는 왜 이리 큰 건지, 이렇게나 소리가 요란한 게 정상인가 아닌가 걱정스러웠다.

얼마 전, 진에어 항공기의 출입문을 제대로 닫지 않고 이륙했던 사건이 떠올라 잠시 아찔했던 것이다.

 

금연을 알리는 기내방송에선 항공기 밖 흡연은 가능하지만 낙하산은 준비되어있지 않다는 재미있는 멘트를 날린다.

물 한 잔을 들이킨 후, 일본입국신고서와 휴대품신고서를 작성하고 나니 19시, 1시간만에 후딱 날아온 후쿠오카다.

 

일본 공항의 입국심사에선 얼굴과 양쪽 검지 지문까지 저장하고 있었다.

오사카 여행 이후 3년만의 일본여행이라 잠시 잊었었다. 입국심사에 이렇게나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별 의미도 없는 이 행위로 40분 이상 소요된 탓에 우리의 캐리어는 몇 개의 캐리어와 함께 외로이 남아있다.

오사카처럼 교토처럼, 여기저기 수없이 조각되어있는 후쿠오카 공항의 한글은 한국인 여행객 수를 말해주고 있다.

 

니시테츠인후쿠오카 호텔
니시테츠인후쿠오카 호텔

후쿠오카 공항 국제선터미널에서는 셔틀버스를 타고 지하철 공항역으로 이동해야 했다.

공항역에서 니시테츠인후쿠오카 호텔이 있는 텐진역까지 달랑 5정거장, 15분밖에 안 걸렸다.

이렇게나 도심과 가까운, 착하디착한 공항이 또 있을까 싶다.

지하철 객차 내부는 오사카처럼 조용하고, 에스컬레이터에 서있는 사람들은 서울과는 달리 모두 왼쪽에 자리하고 있다.

텐진역에 도착하여 긴 지하보도를 지나 16번 출구로 나오니, 넓지 않은 도로의 횡단보도 건너편에 바로 호텔이 있다.

 

24시간 우동가게 웨스트
웨스트

호텔은 금세 찾아 체크인했지만 저녁식사 할 곳을 찾기 힘든 깜깜한 밤이다.

일단 호텔 밖으로 나왔으나 주변엔 아무 것도 없고, 눈을 들어 조금 멀리 봐도 보이는 식당이 없다.

그럼, 텐진-정말로 넓은 텐진-에 있다는 24시간 우동집인 웨스트를 찾아 지도를 펼쳐야 하나.

왔다리갔다리 잠시 헤매다 퇴근하는 듯한 30대 남자-영어 짧은-에게 '웨스트'의 위치를 물어보니 직접 데려다준다.

안 그래도 되는데, 미안하게시리, 

 

웨스트
웨스트

'웨스트'엔 완전한 일본어 까막눈인 나와 겨우 문맹은 면한 남편을 위한 한국어메뉴판이 존재한다.

메뉴판을 뒤적이며 카메라로 촬영하는 것을 본 주방 종업원이 갑자기 뛰쳐나와 나를 만류한다.

일본과 홍콩 그리고 유럽 여러나라를 통들어 메뉴판 촬영을 제지당한 건 처음이었다.

그래, 하지 말라는데 해야 할 절실한 이유는 없다. 안 한다고, 안 할게, 안 한다~ 

'쏘오리'를 외치고 남편을 보며 멀뚱하게 앉았는데, 오래지 않아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웨스트
웨스트

많이 시장하시다는 남편은 우동과 텐동(튀김덮밥) 세트메뉴를, 나는 우엉튀김과 어묵을 올린 우동을 골랐다.

'웨스트'는 오사카 쪽 체인점인 '마루가메'보다 면발의 식감이 조금 떨어진다는 느낌이다.

우동의 면발이 쫄깃한 쪽이 아닌 부드러운 편이었고, 면과 밥 위의 어묵과 튀김은 맛있었다.

호텔에서 멀지 않았기에 진짜 맛있었다면 다시 한번쯤 방문할 만도 했는데, 그 정도 맛은 아니었다.

 

로손편의점에 들러 물과 맥주를 구입해 호텔로 돌아오는 길, 밤바람이 꽤나 쌀쌀하다.

후쿠오카 행 항공기에서부터 오한과 근육통을 호소하던 남편은 종합감기약을 먹고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난 홀로 테이블에 앉아 면세점 인도장에서 받은 면세품을 살펴보고, 아들녀석과 카톡을 하며 맥주캔을 들었다.

감기와 함께 시작한 겨울여행, 내일은 또 어떠한 바람이 불어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