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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16 두브로브닉·프라하·빈

8. 6 (토) 전 : 칼렌베르크에서

새벽 5시반, 휴대폰에 핀에어앱을 깔고 웹체크인을 했다.

헬싱키-비엔나 구간은 좌석이 넉넉했지만, 헬싱키-서울 구간은 남은 좌석이 거의 없었다.

통로쪽 기준으로 나란히 붙어있는 좌석은 하나도 없었기에 우린 통로를 사이에 두고 있는 같은 열의 두 좌석을 선택했다.

 

핀에어는 탑승 36시간 전부터 웹체크인과 무료 좌석지정이 가능한데, 빈 좌석이 거의 없다니 다들 대단히 부지런하다 해야할지,

아니면 좌석 지정 비용을 지불하고 미리미리 좌석 지정을 한 것인지.

원래 예약했던 이코노미 컴포트석 21열은 기종 변경으로 인한 좌석 변경 때문에 이미 취소할 수밖에 없었기에 더 아쉬운 상황.

http://blog.daum.net/stelala/15920077

 

4박 동안 우리를 기쁘게 해 준 커피머신과 캡슐커피
08시 33분 기준 일기예보

어젯밤 갑작스레 감기 기운을 호소했던 남편의 아침 컨디션은 나빠 보이지 않는다.

전통 한식(?)으로 아침 식사를 한 뒤 바라본 TV의 ORF2-오스트리아 공영방송-에선 그리웠던 도시들의 날씨를 전해주고 있다.

어제와 그제 C&A와 ZARA에선 구입한 옷가지들을 번갈아 입어가며 패션쇼를 하던 남편 왈, 컨디션 안 괜찮단다.

 

하일리겐슈타트 지하철역 앞

오전 스케줄은 빈숲의 하일리겐슈타트와 칼렌베르크, 그린칭이다.

일반적으로 빈숲-특히 그린칭-에 가는 목적은 호이리게-햇포도주와 오스트리아식 안주를 판매하는 음식점, 주로 오후 오픈-인데,

우린 이곳을 늘 오전에 간다. 오전엔 도시의 북적거림 대신 한적한 시골 내음이 있기에, 또 상업화된 저녁 즈음의 호이리게 자체-

빈에 살 때도 한 번밖에 안 가봄-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빈숲을 위해 선택된 시간은 항상 오전이었다.  

 

숙소 앞에서 11A 버스를 타고 하일리겐슈타트 지하철역에서 내린 후 38A 버스로 갈아타면 오래지 않아 암브루스터가쎄다.

여기엔 자신의 귀가 더이상 들리지 않음을 알게 된 베토벤이 유서를 썼던 집, 일명 하일리겐슈타트 베토벤 유서의 집이 있다.

6년 만에 빈을 방문한 남편을 위해 잠시 들르는 수고를 했던 것인데, 공사 중인 이곳에 한국인 단체여행객들이 모여 있다.

 

하일리겐슈타트 '베토벤 유서의 집'
하일리겐슈타트 '베토벤 유서의 집'
하일리겐슈타트 '베토벤 유서의 집'

하늘은 맑디 맑고,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풍경을 보여주는 이곳에선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가 없다.

베토벤의 손길이 닿았던 정원도 그대로, 차분한 집 앞 골목길도 그대로, 골목 끝에 멋들어진 모자이크 장식의 집도 그대로다.

이런 고요함이 그리웠던 것일까. 우리의 마음은 가볍게 편안하게 가라앉는다.

 

베토벤에 살았던 집, 지금은 호이리게

버스 38A는 하일리겐슈타트, 그린칭, 칼렌베르크를 아우르는 빈숲의 황금노선이다.

다시 38A를 타고 최고의 조망권인 칼렌베르크로 가는 도중, 버스 맨 뒷좌석에 앉은 한국여인들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칼렌베르크 몇 정거장 전, 전망 좋은 레스토랑 앞에서 하차하는 세 명의 중년여인들, 버스는 이내 정적을 되찾았다.

 

칼렌베르크
칼렌베르크

마음이 뚫릴 만큼 시원한 조망을 선사하는 칼렌베르크, 재작년에 아들녀석과 왔던 난 2년만이고 남편은 역시 6년만이다.

왼편으론 도나우강이 보이고, 2005년 빈에서의 첫 주거지였던 호크하우스도 눈에 들어온다.

훈더트바써가 설계한 쓰레기 소각장은 조망의 한가운데를 근사하게 매만지고 있다.

 

칼렌베르크 레스토랑
칼렌베르크 레스토랑
칼렌베르크 레스토랑

사면이 열려있는 야외 레스토랑에 앉았다. 레스토랑의 이름도 칼렌베르크다.

점심식사를 할까 하다가 프라터의 슈바이처하우스를 떠올리고는 오타크링거 맥주 0.3L만을 주문했다.

습도 낮은 바람은 온몸을 쾌적하게 쓰다듬고, 우린 한없는 기포를 자아내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맥주를 마주하고 있다. 

 

그린칭
그린칭
그린칭

오늘의 그린칭은 그저 38번 트램을 갈아타는 환승지였다.

물론 그린칭도 구석구석 들여다보면 어여쁜 장면이 많이 등장해주지만, 칼렌베르크만으로도 충분했기에, 또 프라터에서의

식사도 우릴 기다리고 있었기에, 그린칭이 종점이자 기점인 트램에 서둘러 올라탔다.

하늘은 여전히 맑고 푸르렀고 상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