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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17 런던

10. 8 (일) : 우리를 위한 자리

헬싱키 핀에어라운지

인천행 항공기에 탑승하기까지 5시간이란 긴 대기 시간이 남아있었다.

그래서 들어간 헬싱키 핀에어라운지. 그곳의 머쉬룸수프는 아주 훌륭했다.

 

그러나 휴식을 취하기에 최적화된 우리 자리가 시끄러워지기 시작한 시각은 1시 반즈음부터였나 보다.

옆 테이블의,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국여인들의 소란함 때문에 우린 자리를 옮겨야 했는데, 그곳까지 하이톤 음성이 또렷이 들렸다.

타국의 공항라운지였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았을텐데 안타까울 뿐이다.

 

탑승구가 변경되고 이륙 40여분 전 탑승이 시작되었다.

여행을 마친 많은 한국인들이 게이트 앞을 지키고 있었고 우린 빠른 입구를 통해 먼저 탑승했다.

 

그런데 이륙을 했는데도 기내 엔터테이먼트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기내 컴퓨터시스템에 문제로 기내 엔터테이먼트가 고장났다는 방송이 나온다.

그리하여 기내와 헬싱키 공항에서 사용할 수 있는 바우처를 준다는 멘트와 함께.

그럼 대체 8~9시간동안 뭘 해야하지, 십수 년 동안 유럽을 오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기내 컴퓨터 시스템 고장으로 식사 서빙도 조금씩 늦어지고 있었다.

인천을 출발했던 항공기에서처럼 음식은 정성을 담아 순서대로 테이블 위에 펼쳐진다.

출국하던 인천발 항공기보다 내 입엔 덜 맛있는 느낌이었고, 저녁식사 후엔 바로 기내가 소등되었다.

조금 전에 받은 바우처로 재빨리 남자 향수와 무민 에코백을 주문하고는 편안히 누워 잠을 청한다.

 

추석 연휴에 만난 11년 만의 런던.

기억이 바스라질 만큼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런던은 우리를 위해 햇살 퍼지는 자리를 그대로 남겨두고 있었다.

그 자리에 들어앉아 기억을 나누고 또 새로운 기억의 뜰을 견고히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