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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19 뮌헨·인스브루크·빈

7. 26 (금) 후 : 시간이 놓인 자리

아우가르텐에서 구시가로 가는 이유는 단 하나다.

내일 아침이면 빈을 떠나야 하니 아마도  지금이 빈의 심장인 구시가를 들를 마지막 시간인 것이다.

 

미술사박물관
자연사박물관

트램을 타고, 왕궁과 마리아테레지아 광장이 있는 Burgring에서 하차했다.

예전에 성벽이 있는 자리인 링슈트라쎄의 안쪽과 주변엔 유서 깊은 빈의 명소들이 많이 모여 있다.

왕궁 문 건너편엔 마리아테레지아 광장을 사이에 두고 미술사박물관과 자연사박물관이 같은 형상으로 마주보고 있다.

 

무제움크바르티어(박물관지구) 입구
무제움크바르티어
무제움크바르티어

오늘도 발길 가는 대로 빈의 중심가를 밟아 지난다.

마리아테레지아 광장에서 도로를 건너 서쪽으로 향하면 레오폴트미술관, 현대미술관, 어린이박물관 등 여러 박물관이

함께 자리하고 있는 무제움크바르티어 즉, 박물관 지구가 나타나 준다.

작년 여름에 선후배들과 빈에 왔을 때는 이 광장이 보이는 야외 레스토랑에서 정갈하고 근사한 점심식사를 했었다.

그때도 오늘처럼 여름 햇살은 뜨거웠고 광장에는 똑같은 빛깔, 똑같은 형태의 안락의자가 펼쳐져 있었다.

 

신왕궁
율리우스마이늘 (왼쪽 건물은 카페, 오른쪽은 샵)
카페 하벨카

시원한 물줄기가 왕궁 정원에 쏟아지고 있다. 대기의 열기를 식혀주기엔 역부족이지만.

콜마크트와 그라벤 거리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율리우스마이늘샵에서 커피를 구입한 후 구시가 표정을 기억에 담는다.

커피 맛으로 손꼽히는 카페 하벨카에 앉은 사람들, 더위를 피해 구시가 그림자 위를 걷고 있는 사람들....

카페에 들어갈까 하다가 에어컨 없는 실내도, 바람 한 점 없는 야외도 외면한 채 숙소에 들어가기로 한 우리.

 

빈의 최중심인 슈테판플라츠역에서 지하철 객차에 오른다.

숙소 가는 트램으로 갈아타기 위해 프라터슈턴역에 내렸는데, 역 안에도 역 앞에도 순찰 중인 경찰 무리들이 너무도 많다.

전에 빈에 살 때는 상상도 못했던 장면들이라 여행 왔을 때 한번씩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상세한 이유는 모르지만, 이제 더 이상 '평온'은 빈의 상징이 아닌 듯하다.

 

신형 트램

오후 1시, 라면을 먹고 피자-어제 저녁식사 후 포장해온-도 먹고 마지막 남은 치즈스틱까지 모두 먹어치웠다.

남편은 인터넷으로 KBO리그 야구 중계를 켜 놓고 시청하고 있다. 지구 저편 경기를 생중계로 보다니 좋은 세상이다.

그렇지만 14살부터 야구에 빠진-당시 여중생 야구팬은 전무- 태생적 야구광인 내게, 2019년은 삶의 즐거움 하나를 잃은 해다.

경기를 볼 때마다 답답하고 속 터지고, 안 보면 궁금한 형국이라 야구를 즐기지도 못한 채 미칠 지경이다.

 

오후 5시가 넘어도 바깥 공기는 여전히 덥다.

먹고 놀고 자고 TV 채널도 돌려 보면서, 더위에 차인 몸과 마음을 완벽하게 재생했다. 휴식은 최고 보약.

 

도나우강
U1 Kagran역

6시, 숙소를 나와 Kagran으로 향한다. Kagran역 앞 도나우젠트룸에서 중요하고 귀한 약속이 있기 때문.

극장이 있는 도나우플렉스 쪽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H엄마와 아빠, 동생을 만났다. 너무너무 반갑다.

남편은 서울로 출장 오는 H아빠를 거의 해마다 만나지만, 난 H가족과 3년 만의 상봉이다.

 

도나우젠트룸(복합쇼핑몰)
도나우젠트룸

레스토랑에서 1시간 동안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눈 다음 H네 새 집으로 이동했다.

비엔나 이쁜 동네의 이쁜 새 아파트-비엔나 아파트는 대부분 저층-가 매우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다.

맥주와 안주와 따스한 정이 어우러져 우리들의 이야기는 자정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가 비엔나에 살 때 이야기, 자식들 이야기, 현재 비엔나 부동산 이야기, 슈트란트카페에 얽힌 이야기....

 

숙소 가는 택시에서 본 비엔나 밤거리

숙소로 돌아오는 택시 안. 나이 지긋한 기사 아저씨가 우리 국적을 묻는다.

한국이요, 그리고 내일 돌아가요. 대한민국 서울, 그곳으로.

어둠에 싸인 빈의 새벽 공기엔 어느 새 톡톡한 서늘함이 묻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