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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22 빈

9월 27일 (화) : LOT의 만행

LOT폴란드항공은 이름처럼 폴란드 국적 항공사다.
허브공항은 폴란드 바르샤바이고, 준 허브공항인 부다페스트와 인천 사이의 직항을 운항한 건 2019년 하반기 즈음일 것이다.

이번 여행의 항공권은 2022년 2월에 예약했다.
사실 2021년에 예약해둔 로마-피렌체-빈 일정인 아시아나+LOT마일리지항공권 중 아시아나항공권이 2022년 1월에 강제취소되었다.

로마 직항 항공기를 6월초에 띄우지 않는다-6월말부터 운항-는 것이다. 팬데믹은 끝을 보이지 않았기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결국 8-9월 빈만 왕복하는 LOT+오스트리안을 마일리지로 발권했다. 2019년에 경험한 LOT비즈니스가 괜찮았기에 선택했다.

부다페스트 공항

탑승 시각이 임박한 인천 행 LOT항공기의 탑승구 앞, 인파가 어마어마하고 길게 늘어선 줄도 어마어마하다.

우린 어디에 줄을 서야 할까. 비즈니스클래스 탑승줄은 어디지. 이상하네, 왜 안 보일까.

어이없이 그저 긴 줄 옆에 가만 서 있으니, 직원들이 줄 선 승객을 먼저 탑승시키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아차 싶었는지 줄을 끊고는 갑자기 비즈니스클래스 비즈니스클래스라고 외쳐댄다. 

 

여행카페에서 항공기 탑승시 왜 비즈니스클래스 승객을 먼저 탑승시켜야 하는지 묻는 사람이 있었다. 다 같은 승객인데 하면서.

항공기 비용을 더 지불하고 높은 등급의 좌석을 구매하는 이유는 그만큼 안락함과 서비스를 제공받기 때문이다.

덜 기다리고 덜 힘든 비행을 위해 더 많은 것을 지불한 승객과 가격 저렴한 항공권을 구입한 승객이 똑같은 서비스를 받을 순 없다.

 

그래서 어떤 항공사든 중장거리 운항시 비즈니스석 승객과 일반석 승객을 함께 줄 세워 같이 탑승시키지는 않는다.

비즈니스클래스에 많이 탑승하진 않았으나 단 한 번도 이런 경우를 본 적도, 겪은 적도 없다.

현재 이 상황은 LOT 항공의 수준을 제대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LOT폴란드항공 기내
고장난 비즈니스클래스 3B 좌석

비즈니스클래스라는 직원들의 외침에, 우리 말고도 여러 명의 비즈니스클래스 승객들이 튀어나왔다.

늘어선 줄 사이-이게 뭐니, 차라리 앉아있다가 제일 늦게 탈 걸-로 들어가 탑승권을 내미니, 남편 탑승권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옆에 있는 직원에게 가보라 했고 그 직원은 또 다른 직원과 대화를 하더니, 좌석에 문제가 있으나 탑승하면 승무원이 알아서 해 줄 거라 했다.

탑승해서 확인하니 남편 좌석의 조절 버튼에, 세상에나, UNSERVICEABLE라는 스티커가 붙어있다.

 

이 모자란 항공사는 작동도 안 되는 좌석에 어찌 승객을 앉힐 생각을 했을까. 이 좌석은 승객을 태워선 안 되는 자리다.

좌석 바꿔달라고 해야 해야 했다. 인천 출국 시 서너 좌석이 비어있었으니 이 항공기도 그럴 거라 여겼다.

그런데 비즈니스석 승객들이 왜 이렇게 계속 끝없이 들어오지, 너무 많은데. 

 

끊임없이 우리 옆을 스쳐 지나는 승객들, 알고 보니 항공기 출입문 중 맨 앞 하나에만 탑승교를 연결한 것이다. 

탑승교를 출입문 한 개에만 붙일 경우 일반적으로 비즈니스석과 일반석 사이에 있는 문에 연결하지 않나.

맨 앞 출입문을 통해 300명 가까이 되는 승객이 모두 비즈니스석 통로를 지나고 있다. 진짜 맨 마지막에 탑승해야 했다.

 

맛대가리 없는 헝가리맥주
첫번째 기내식 : 뭘까

불길한 염려대로 비즈니스석 24석은 만석이었다.

웰컴드링크가 나온 후 남자승무원-사무장인 듯-이 오더니 남편에게 사과하면서 좌석에 문제가 있어 작동이 안 되나 수동으로 움직여서

누울 수는 있게 해 줄 수 있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러니까 깍듯이 앉는 좌석 형태나 수평 형태 두 가지만 가능하다는 거다.

그러면서 불편함을 감수(?)하는 대신 남편에게 바우처를 제공해 주겠다고 했다. 

 

탑승 전부터 엉망이더니 기내에서까지 왕창 엉망인 상황이 돼 버렸다.

여행 내내 좋았는데 이게 뭐람, 역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어. 화나지만 어쩔 수 없나, 바우처로 위안삼아야 하나.

아니, 아니었다. 그때 우린 대동단결 합심하여 끄집어낼 수 있는 분노를 모두 분출해서 강하게 항의하고 또 항의해야 했었다.

 

게다가 음식은 또 왜 이렇게 부실할까.

쇠고기나 생선이나 해산물이 전혀 없이 오리, 닭, 돼지고기 중에 고르란다.

전엔 깔끔했던 기내도 관리 부실인지 엄청나게 낡았고, 음식은 기대를 안했으나 이건 선택지가 너무 심각하다.

그리고 이 항공사, 인천 출발 때와는 달리 인천 행 비즈니스석 승객들에게 어메니티를 제공하지 않았다. 기내 슬리퍼만 있었을 뿐.

 

영화 '유체이탈자'
영화 '어거스트 러쉬'

영화 '유체이탈자'를 시청하는 도중, 승무원들이 오더니 남편 자리를 수평으로 만들어놓곤 가버린다.

봐서는 안 될 '유체이탈자'를 다 보고는 '어거스트 러쉬'를 1시간 가량 시청한 후 잠에 빠졌다.

고장난 3B 자리를 차지한 남편은 잠이나 푹 자야겠다며 맥주 3캔을 마신 터라 이미 숙면 중이었다.

 

고장난 3B 좌석
두번째 기내식

착륙 2시간을 남기고 기내에 등이 켜졌다. 남편은 승무원을 호출했고 그들은 수평 자리를 좌석으로 만들었다. 

참말로 황당한 상황, 그런데 더 황당한 것은 착륙이 얼마 안 남은 시각인데도, 제공하겠다던 바우처를 아직도 주지 않았다는 것.

남편은 사무장에게, 바우처가 기내에서 바로 사용 가능한지 물었고, 그는 아니라고 대답하고는 여전히 바우처를 건네주지 않았다.

 

곧 주겠다고 하곤 감감무소식.

이 사람들 뭘까, 우리가 먼저 바우처 내놓으라 했나, 우리가 좌석 작동 안하게 만들었나.

항공기 승객에게 말도 안 되는 기만을 떨다니, 이런 꼼수를 부리다니, LOT 본사 방침인가.

그지같은 바우처를 달라고 또 말하기도 어이없어 그냥 두기로 했다. 어차피 LOT 공홈에 Claim 할 계획이니까.

 

별맛 없는 두번째 기내식을 먹은 다음, 휴대품 신고서와 건강상태 질문서를 작성했다.

3년반 전에 탑승한 LOT비즈니스클래스가 괜찮았던 이유로, 마일리지로 발권한 LOT는 이번 여행의 유일한 오점이다.

기내 좌석에 문제가 생긴 것보다, 승객을 대하는 승무원들의 태도는 있을 수 없는 만행이었다.

망할 LOT 잘 가라, 그동안 끔찍했고 다시는 보지 말자.

 

입국 심사 후 받은 캐리어 3개 중 남편의 24인치 캐리어 바퀴가 박살이 나서 덜렁거린다.

비싸지 않고 오래된 캐리어라 새 캐리어를 배송 받기로 하고 집으로 향했다.

집까지 가는 공항버스-22년 9월 기준-가 없는 시각, 직행 공항철도로 서울역에 도착했는데 그곳에서 택시 승차장까지 가는 길이

서울에서 지방 두메산골 가는 것보다 복잡하고 힘들다. 

 

따끈하고 푸른 서울의 하늘.

우리 집에선 두 아들-아들과 강아지-이, 낮을 밤으로 삼아 정신없이 자고 있다.

돼지가 친구하자고 달려들, 자유분방한 집 안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