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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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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내려놓기 아주 오랜 만에 대학로를 걸었다. 연극이 준 웃음의 행간에서 내가 깨달아야 했던 건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희망과 욕심, 이 둘을 온전히 내 손아귀힘에서 풀어놓아야 어디선가 비껴가고 있는 또다른 희망을 만날 수 있을 듯하다.
상처 그녀석은 그렇게 자기 방어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금껏 늘 그래왔으니까. 그런 방법이 아니었다면 그 공간에서 버틸 수도 없었을 것이다. 4년 만에 복직한 직장은 한 해 한 해가 다르다. 작년에도 한두 번 위태로운 모습이 있었지만, 큰 문제 없이 잘 넘어 지냈는데, 이번엔 참 답이 없다. 그녀석 옆의 큰 개체는 주먹이 먼저고, 무지와 컴플렉스가 먼저다. 우기고 지르면 되는 줄 안다. 인면수심이 따로 없다. 그래서... 계속 마음이 아프다. 가슴 한 언저리가 아프다.
화무십일홍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던가. 열흘 전만 해도 화려했던 벚나무가 이젠 꽃의 자취는 찾을 수 없고 새로운 자태를 만들고 있다. 나라는 매일 무겁고 직장은 날마다 불편하다. 나라의 곪은 문제가 일터까지 흘러들어와 그 여진이 아직도 그치지 않는다. 화무십일홍인데, 얼마나 더 대단한 영화가 기다린다고....
파리에서 온 편지 2005년 3월부터 오스트리아에 살기 시작한 이후, 처음 떠난 긴 여행지가 파리였다. 사실은 미리 예정한 여행이 아닌, 곧이어 반드시 일어날 '어떤 무지몽매한 사건'의 공모자가 절대 되지 않기 위해 급히 파리로 도피 여행을 떠난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이후의 다른 여행과는 달리 준비가 매우 부족했고, 6일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파리에만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효율성은 가장 떨어지는 여행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효율적인 여행이란 내가 원하는 여행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파리 여행은 무엇을 보고 어디를 걷고 무엇을 느껴야 할지 사전 사고가 거의 돼있지 않았었다. 그러다보니 남들 가는 유명관광지만 따라다녔고 파리의 지저분함에 실망하기 바빴다. 그래서 파리는 지금까지도 가장, 늘 아쉽다. 어느 날, 인터넷 서점에서..
명절에 대하여 '설'이란 이름을 가진, 명절이란 명사를 지닌 행사가 지나갔다. 이번엔 처음으로, 독일 출장 중인 남편 없이, 아들녀석과 단 둘이 시집과 친정을 오갔다. 다행히 시집과 친정이 모두 서울이라, 단거리 운전 포함 간소하지 않은 음식 장만과 기타 일거리들만 임무로 주어졌다. 십수 년 동안의, 짧지 않은 명절 답습의 경력을 지니고 있지만, 4년의 공백과 4년 동안의 새 문화에 대한 고찰이 있어서인지, 겪을수록 문화와 세대의 벽을 실감케 할 뿐인 '설과 추석'-제사도 물론-이 내겐 반갑지 않다. 규율과 인습에 밀려 일시적 대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삼엄한 노동의 의무만 주어지는 이 시절이 결코 달갑지 않은 것이다. 물질적 가치는 현대지만, 정신적 가치는 근세이기를 고집하는 기득권 세력이 있는 한, 정신적 가치의 획기적..
광장 지난 주말, 십수년 만에 광화문 주변엘 다녀왔다. 아니, 다녀왔다기보다 잠시 눈도장만 찍었다는 표현이 나을 것이다. 토요일 오후, 서울 시내가 가장 붐비는 시각에, 우리 가족은 승용차를 이끌고 서울 중심가로 향했다. 귀국한 지 1년이나 되었지만, 한강을 건너 중심가에 갈 일이 없었기에 광화문이나 청계천조차 발걸음을 하지 않은 점을 떠올리며 결행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출발한 지 얼마 안 되어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들이 빠르게 실행되기 시작했다. 올림픽대로는 물론, 중심가로 통하는 길들 중 제대로 소통되는 곳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아, 지하철을 타는 것이었어... 후회해도 이미 때는 늦었고, 천천히 움직이는 차 안에서 거리 구경을 하며 예상보다 늦게 광화문에 도착했다. 교보빌딩 지하에 차를 세우고 광..
벌써 1년 블로그를 손에서 놓은 것이 서너 달인가 싶었다. 그런데, 마지막 글을 올린 날짜를 보니 5월, 그리고 지금은 해가 바뀐 1월. 세월이 뭐 이렇게 눈 떴다 감을 새도 없이 가는지, 서울살이는 여유를 찾기 어렵다.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는 편은 아니지만, 정말은 영혼의 여유가 없었다. 일에 쫓기고, 마음을 새치기 당하고, 곁을 둘러볼 겨를도 없이 하루하루가 흘러만 갔다. 오스트리아에서 돌아온 지 벌써 1년. 1년 내내 서울 생활에 적응하느라 애쓴 큰밥돌과 작은밥돌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나도 4년여만에, 집안 살림과 직장 일을 병행하느라 만만치 않았는데, 잠시 휴식할 즈음, 해가 바뀌자마자 치솟는 눈발과 강추위는 더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이들의 기세에 보기 좋게 나가떨어질 순 없지. 거센 눈발과 매운 추위보..
국립 중앙박물관 2006년에 개관한 새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는 날, 경복궁 근처에 박물관이 있던 시절엔 겨울이면 한번씩 찾아가곤 했었는데, 현대적인 새 박물관은 건물도, 위치도 아주 낯설다. 오후엔 어린이날기념 그림그리기대회까지 열린다니 꽤나 복잡하리란 예상을 하고 작은밥돌과 단 둘이 박물관 계단을 오른다. 박물관 입구엔 그림그리기대회 접수데스크도 보이고 한쪽엔 '이집트 문명전'에 입장하려는 긴 행렬도 눈에 띈다. 우리 것을 알자는 의도로 작은밥돌을 데리고 박물관 관람을 시도했는데, 고고관, 미술관, 아시아관 등 전시실을 둘러보는 내내 녀석은 흥미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유럽 박물관에 익숙해진 탓인지 그리스 로마 신화가 없는 우리 박물관엔 제대로 눈길을 주지 않는다. 중국 천지창조 신화 속에 등장하는 '복희와 여와'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