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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04~08)/남유럽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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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7 : 그라나다의 향기 알함브라를 떠난 우리는 알함브라 속으로 들어올 때처럼 미니버스에 올랐다. 버스에서 내려 누에바 광장을 지나 숙소에 들어섰을 땐 이미 2시도 훨씬 지난 시각이었고 이른 아침부터 강행군을 한 우리는 라면을 끓여 뱃속을 채운 뒤 바로 널브러지기 시작했다. 집에서건 여행지에서건 낮잠에 인색한 작은밥돌과 나는 거실 소파에 길게 앉아 TV를 향했고, 낮잠대마왕 큰밥돌은 침실에서 안락하고 달콤한 낮잠에 빠졌다. 특히 큰밥돌은 알함브라에서, 회사에 문제가 생겼다는 전화를 받았던 터라 피곤한 몸과 곤두선 신경을 함께 달래야 했다. 스페인 평일 낮 TV도 일본 만화가 점령해 있다. 작은밥돌은 스페인어가 더빙된 '도라에몽'을 보며 깔깔거리고, 나는 죄다 스페인어로만 쓰인 탁자 위 그라나다 안내서를 뒤적이며 어제 저녁에 중국..
스페인 6 :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2 나사리 궁을 나와 알카사바로 향했다. 역시나 알카사바 입구에서도 직원이 바코드 인식기를 티켓에 들이댄다. 웅대한 알카사바는 로마시대 성채 자리에,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하던 무어인-북아프리카 이슬람인-이 9세기에 건축한 것으로, 지금은 그 자취만 남아있다. 나사리 궁에서처럼 알카사바에서도 옛 이슬람인의 주거지인 알바이신 지구가 보인다. 미로 같은 좁은 길의 연속인 알바이신 지구는 알함브라 궁전을 조망하기에, 특히 알함브라 야경을 즐기기엔 가장 이상적인 지역이라 하는데 직접 체험하고 싶은 의욕은 절대 고취되지 않아서 멀리서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알카사바를 벗어난 우리는 카를로스 5세 궁전으로 발길을 돌렸다. 9세기에 지어진 알카사바가 알함브라 궁전 내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이라면, 카를로스..
스페인 5 :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1 아침 해가 일어나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노곤한 내 눈을 띄운 범인은 밤새 아니 늦은 새벽까지 이어지던 음악 소리였다. 3층에 위치한 아파트 1층엔 bar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늦은 밤부터 시작된 음악은 새벽 6시가 돼서야 끝을 보았던 것이다. 물론 그라나다 아파트 렌탈 사이트에선 우리가 머문 아파트의 소음에 대해 명시하고 있었지만, 아파트 위치가 위치인 만큼, 또 스페인의 밤문화가 긴 만큼, 주변 소음에 대한 시끄러움이라 생각했을 뿐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그러나 숙면을 취하지 못했다고 해서 일찍부터 서둘러야 할 스케줄을 미룰 순 없었다. 수십 번 예약을 시도하다 실패한 -알함브라 사이트와 스페인 기차 사이트, 정말 징그럽게 예약이 안 된다- 알함브라 궁전으로 아침 일찍 가야 했던 것이다. 전날..
스페인 4 : 그라나다 가는 길 오늘은 마드리드를 떠나 그라나다로 가는 날. 9시에 호텔 체크아웃 후 그제 들렀던 슈퍼마켓엘 갔으나, 9시반에 문을 연다는 안내판만 붙어있을 뿐 출입문이 굳게 닫혀 있다. 이후에도 겪게 되지만 스페인 상점들은, 아침 일찍 열고 저녁 일찍 닫는 오스트리아의 아침형 슈퍼와는 다른 저녁형 상점이었다. 결국 슈퍼 한 코너에서 직접 굽는, 싸고 맛있는 빵은 포기한 채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오르니 그때가 마침 출근 시간인 듯 승객들이 꽤나 많다. 캐리어를 끌고 버스 뒤편으로 가려는데, 버스기사가 캐리어를 끌지 말고 들고 가라는 손짓을 하며 타박을 한다. 캐리어가 얼마나 크고 무거운데 들고 가냐고요. 들고 다닐 거면 캐리어를 왜 가지고 다니냐고요... 호텔 처음 올 때 탔던 버스기사는 무지하게 친절했구만, 버스 바..
스페인 3 : 문화라는 이름, 투우 고대 원형경기장을 연상시키는 투우장 앞에도 엄청난 햇살이 쏟아지고 있다. 투우장 주변을 둘러보기 위해 미리 이곳에 도착했지만 사방엔 간식 파는 상인들만 있을 뿐 아무 것도 없다. 게다가 인터넷으로 예매한 티켓을 입장권으로 바꾸기에도 시간이 너무 일렀다. 쉬면서 배 채울 곳을 탐색하다 발견한 투우장 건너편의 서민적인 카페. 시원한 실내에 앉아 간단한 요기도 하고 거리와 카페의 사람 구경도 하며 시간을 채운다. 투우 시작 1시간 전인 6시, 투우장 매표소에 인터넷 예약 출력물을 내미니 왼편으로 가라고 한다. 우리처럼 인터넷 출력물을 가지고 있던 백인 여인을 따라 갔더니 예약번호를 입력하여 입장권으로 바꾸는 기계가 있다. 곧 정문이 열리고 계단을 올라 야구장을 연상시키는 복도를 따라 걷는다. 투우장 출입구마다..
스페인 2 : 마드리드 스케치 아침인 듯한 느낌에 눈을 뜨니 5시 40분, 빈과는 달리 아직 어둡다. 알람 시각까지도 꽤 남아있는데, 역시 습관은 못 속이는지 빈에서의 기상 시각과 비슷한 즈음에 눈이 떠진다. 한참을 뒤척이다 자리를 털었다. 6시반, 이제야 밖은 환하다. 어딜 가나 잘 자는 밥돌들은 아직도 한밤 중. 부엌 딸린 호텔이라 빈에서부터 끌고온 식재료들로 식사 준비를 한 후 커튼을 열었다. 아침밥을 먹고, 커피도 한 잔 마시고 어제 근처 마트에서 사온 과일까지 아주 든든한 아침이다. 스페인은 피레네 산맥 너머 이베리아 반도의 85%를 차지하며 남한 면적의 5배에 달하는 넓은 영토를 지니고 있다. 인구는 약 4,400만 명, 그 중 수도 마드리드엔 480여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 산다. 15-16세기 대항해시대에 많은 식민지를 ..
스페인 1 : Hola, 마드리드 우리의 여름 여행을 기뻐해주는 듯 쾌청한 하늘이다. 공항버스로 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0시반, 스페인 항공사인 이베리아 항공의 체크인데스크엔 여행객이 바글바글하다. 긴 줄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의 국적을 가늠하는 것도 재미나는 일, 스페인 사람인 듯한 얼굴도 많이 보인다. 짧지 않은 기다림을 지나 12시반, 항공기가 이륙한다. 행여나 하는 의심은 했었지만, 이베리아 항공은 저가항공도 아니면서 기내에서 무료 제공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작은밥돌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린 채, 물을 포함한 음료수와 빵도 모두 유료 판매되고 있었다. 김밥 제대로 먹어주시고 눈 좀 붙이려는데 이건 또 뭐람, 낡은 비행기가 엄청나게 흔들린다. 기류 이상이라는데, 상하로 휘청거리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나도 모르게 낮은 탄성이..
스페인 5 : 고딕지구 거닐기 떠나야 하는 겨울 아침이 아쉬움으로 채워진다. 호텔 체크아웃을 하기 전, 어제 다 둘러보지 못했던 고딕 지구로 간다. 고딕 지구의 어느 좁은 골목길, 손때 묻고 삶도 배어있는 담벽에 기대어서면 잠자던 어린 시절 추억들이 슬며시 굴러나올 것만 같다. 스페인 말라가에서 태어나 바르셀로나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피카소의 미술관도 이 고딕지구에 있다. 벽면에 적힌 휴관일과 내 휴대폰 속 달력을 맞추어보곤 피카소와는 말라가에서 만날 것을 기약한다. 어제에 이어 휴일인 오늘, 고딕 지구엔 고요하고 잔잔한 걸음 소리만 가끔 들릴 뿐. 닫힌 문 가린 셔터에 그려진 예술가적 그림과 발코니의 독특한 조형물은 거리 분위기를 한결 로맨틱하게 한다. 호텔로 돌아와 짐을 꾸렸다. 공항에서 중심가로 왔던 길과는 다른 방법으로 공항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