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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04~08)/남유럽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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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1 : 그곳에 피렌체가 있다 올 여름은 유난히 빨리 지났다. 7월의 어느 날은 숨쉴 수 없이 더웠고, 8월 어느 날은 숨쉴 수 없이 분주했다. 몸이 바쁘고 마음도 뛰어다녀야 했다. 그 와중, 부지런함이 지나쳐 3개월전에 예약해놓은 비행기까지 타야 했던 상황~ 큰밥돌은 서울에서 빈으로 돌아온 다다음날 또 이탈리아 행 비행기에 올라야 했다. 매력이 많은 나라임엔 분명하지만 이탈리아 예찬론자도 아닌데, 어찌하다보니 이탈리아 땅을 밟는 것이 벌써 4번째다. 물론 긴 일정 대신 짧은 일정을 선호 -타의적, 강압적 선호- 하다보니, 남들은 한 번에 다 훑고 오는 것을 조각조각으로 나누고 또 나눌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낸 결과다. 토요일, 짐을 챙기고 여행 첫날의 최대 무기인 도시락도 싸들고 공항으로 향했다. 어느 새 정오가 지나고, 집에서..
그리스 7 : 에게 해를 두고 산토리니의 마지막 아침, 알람을 맞춰놓지도 않았어도 눈이 먼저 뜨인다. 깊은 속에서부터 아쉬움이 꿈틀대고 있었던 게다. 시장기가 도는지 작은밥돌이 일찍부터 시키지도 않은 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토스트기에 식빵을 넣고는 식탁 위에 접시와 포크, 스푼을 날라다 놓는다. 그 사이 나는 계란을 삶으며, 짐을 챙겼다. 토요일인 어제처럼 오늘도 아침부터 피라 중심가가 북적인다. 오가며 자주 보던 타베르나에선 아침부터 고기를 통째로 굽고 있고, 오픈 시간을 써놓지도 않은 절벽 쪽 카페들은 일제히 일찍부터 문을 열고 손님을 맞는다. 이 바다, 마지막 보는 이 에게 해. 꿈길 같이 푸른 아침 기운이 우리를 감싼다. 푸른 에게해를 닮은 타베르나에도, 붉은 노을 닮은 와인 상점에도 산토리니의 빛깔이 선명히 쏟아지고 있다...
그리스 6 : 산토리니의 태양마차 어제 이아 마을에서 제대로 못 본 석양이 못내 아쉬웠나 보다. 내일 아침 일출이라도 보리라 다짐했으니. 숙소에서 동쪽 바다 끝이 보이니 기대도 했건만 어찌된 일인지 산토리니의 태양은 요리조리 우리를 피해가기만 한다. 오늘 아침 일출 역시 구름에 가려 보이는 듯 마는 듯. 그냥 바다나 보러 가자~ 여행지에선 부지런한 새가 모이를 더 빨리 찾고 또 멀리, 높이 날 수 있다. 너무도 지당하신 이 말씀 따라 렌터카를 떠매고 얼른 까마리 해변으로 날아갔다. 까마리는 산토리니가 화산섬이라는 근거를 보이려는 듯 검은 모래와 자갈로 이루어진 바다로, 무르익지 않은 봄이고 게다가 이른 아침이라 바다는 한없이 한적하고 고요하다. 긴 나뭇가지를 끌고 다니는 한 녀석-작은밥돌-과 낚시꾼들이 아니었다면 인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
그리스 5 : 이아의 노을 낮에도 그다지 포근한 기후는 아니지만, 밤에는 섬이라 그런지 체감 기온이 뚝 떨어진다. 히터를 켜놓긴 했어도 밤새 때아닌 추위와 전투를 치르고 난 아침, 멀리 동쪽 바다의 하늘엔 구름이 잔뜩 뭉쳐있다. 전날 오후, 호텔에서 미리 냉장고에 넣어둔 아침 식사가 어떻게 생겼을까나. 식빵과 조각 케이크, 버터와 잼 그리고 오렌지 주스가 예쁜 바구니에 담겨있다. 식빵을 토스트기에 굽고 어제 저녁에 산 계란을 삶고, 역시 계란과 함께 구입한 우유에 콘프레이크까지 푸짐하다. 여행시 빼놓을 수 없는 문화 체험은 그 나라 텔레비전 시청이다. 텔레비전에서는 유람선 침몰사고 소식을 전하고 있는데, 당연히 말은 전혀 알 수가 없고 '산토리니'라는 단어만 들린다. 나중에 남편이 호텔직원에게 물어보니 사고난 배는 1,500여명을..
그리스 4 : 꿈꾸는 산토리니 어젯밤, 타베르나에서 연주와 공연에만 취했던 게 아니었나보다. 아침에 일어나니 뱃속 상태가 정상이 아니다. 게다가 큰밥돌은 어젯밤에 못한 샤워를 하겠다며 캐리어백을 뒤적거리는데, 입을 런닝이 없단다. 이번엔 여행 가방을 싸면서 옷은 각자 챙기기로 하고는 확인을 안 했더니 런닝을 빠뜨리는 사달이 나버린 것이다. 편히 입을 바지도 안 가져왔더만. 업무에선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믿는 구석이 있는지 집에선 한번씩 사고를 친다. 오늘은 산토리니로 이동하는 날인데 트레이닝 바지나 런닝을 살 시간이나 있을지. 아무튼 이래저래 속은 부대꼈지만, 아침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갔다. 별 셋 호텔치곤 조식이 잘 나오는 편인데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 이럴 땐 콩나물 해장국이 최곤데 말이다. 체크아웃 후 나온 아테네 거리 햇살..
그리스 3 : 아테네, 네게 취한 오후 플라카 레스토랑에서 음식들로 속을 든든히 채우고 나니 아크로폴리스를 향하는 걸음은 더욱 경쾌하다. 레스토랑 종업원에게 정확히 확인한 노선대로 다가가니 아크로폴리스 입구가 눈 앞에 있다. 155m 높이의 석회암 산에 자리한 아테네의 상징 아크로폴리스는 고대에 올림포스 신들에게 제사를 지냈던 곳으로 옛날엔 함부로 오를 수 없었던 곳이었다고 한다. 이곳도 역시 18세 이하는 무료 입장인데, 아크로폴리스 입장권에 다른 유적지의 입장권이 함께 포함되어있어 끼워팔기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고고학 박물관처럼 이곳 아크로폴리스에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다. 입구에 들어서서 바로 오른편에 위치한 헤로데스 아티쿠스 극장은 기원전 4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무대와 관람석은 파괴되었던 것을 새로 지은-복원 아닌- 흔적이 지..
그리스 2 : 신을 빚은 도시 아침식사 하러 식당으로 내려가기 전, 베란다에 나가보니 뿌연 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어제 아침에 확인한 일기예보에선 '4일 오늘 맑음, 5일 내일 흐림'이었는데... 식당 창 밖으론 단체여행객을 실은 관광버스가 출발할 준비를 하고, 식당 내부엔 부지런한 사람들이 벌써 식사를 하고 있다. 다양한 메뉴를 이것저것 골라놓고 커피를 두 잔째 마시고 있는데, 옆 테이블 두 남자 중 하나가 우리에게 시간을 묻는다. 작은밥돌이 웃으며 친절히 말해준다. 8시라네~ 아테네 여행의 첫번째 하이라이트는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으로, 숙소에서 걸어서 10분 거리다. 씩씩하게 걷는 도중, 굽 높은 구두 때문에 호텔을 나오자마자 발바닥이 말썽이다. 마침 아침 일찍 문 연 구두 가게가 있다. 굽 낮고 편한 구두를 사서 신고, 신..
그리스 1 : 신화를 찾아서 오늘 아침 하늘도 봄답다. 부활절 방학과 휴가가 한창인 요즘이라, 떠나는 사람들이 많으리란 예상을 하며 공항으로 향했다. 역시나 시내와 외곽 도로 모두 한산하고 공항은 인파로 북적인다. 기내에서 2시간을 보내자 비엔나보다 1시간 빠른 아테네가 보인다. 상형 문자 같은 안내판을 보니 비로소 그리스라는 실감이 든다. 아테네로 날아오면서 3시간(비행2시간, 시차1시간)을 떠나보내고 짐 찾는 데에도 30분이나 날려보냈다. 아테네 공항도 사람들로 북적이기는 만만치 않은데 벌써 오후 2시가 훨씬 넘어있다. 아테네 공항에서 예약 호텔이 있는 오모니아 광장까지는 공항버스로 신타그마까지 움직인 후 그곳에서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어느 정도 각오한 일이지만, 'E95'라고 쓰여진 공항버스 맨 뒷자리에서 바라보는 아테네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