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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04~08)/남유럽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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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4 : 포트벨에서 7시 50분, 아침식사를 하러 간 호텔 식당이 굳게 닫혀 있다. 공휴일 조식시간은 8시부터라 했으니 우리가 쓸데없이 일찍 가긴 했다. 뭐, 별 수 없이 다시 객실로 돌아왔다가 잠시 후 다시 들어간 식당엔 직원 말곤 아무도 없다. 그런데, 빵을 접시에 담고 커피를 들고 자리에 앉았을 즈음, 갑자기 식당 안이 소란스러워진다. 아이 둘은 실내를 뛰어다니고 남녀 어른의 목소리는 중국인처럼 성량이 풍부하다. 수세미 머리에 슬리퍼와 낡은 체육복 차림, 게다가 그들이 가고 난 후 탁자에 수북히 남은 음식들. 여행을 하며 일본인들의 이런 행태를 보았던 건 처음이다. 아침 위장을 채웠으니 바쁠 것 있나, 오늘은 좀 천천히 움직여볼까. 9시반, 크리스마스 아침은 지하철도, 거리도 모두 평온하고 한산하다. 그래도 얼마나 다..
스페인 3 : 세상에서 가장 긴 벤치 몬세라트에서 바르셀로나로 되돌아온 시각은 해가 서녘으로 한참 기울었을 때였다. 역에서 내려 지하철을 다시 타고, 어제에 이어 가우디의 흔적을 찾아 구엘 공원으로 간다. 지하철에서부터 공원까지 가는 길의 경사가 만만치 않다 싶었는데, 우리를 구원하려 나타난 그것의 정체는... 어라, 야외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였다. 유럽 어느 도시에서도 보지 못했던 야외 에스컬레이터 타는 재미가 퍽이나 신난다. 앞서 타며 내게 손 흔드는 작은밥돌. 그런데 비가 오면 관리를 어찌한다지, 전기가 자동 차단되나. 구엘 공원은 가우디의 후원자였던 구엘이 투자하여 가우디의 설계로 언덕 위에 세운 공원으로, 20세기초에 완성된 공간이다. 우리가 입장한 방향은 공원의 후문 쪽이었는데 공원에 발을 딛자마자 첫인사를 나눠준 것은 세상에나,..
스페인 2 : 몬세라트 아침 7시, 커튼을 제치고 베란다에 나가보니 새벽 어둠이 가시지 않은 하늘엔 보름달만 둥그렇게 떠 있다. 호텔 뒤편에 위치한 바르셀로나 시민들의 집 대부분은 아직 점등 전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저녁형 인간이라 해야 할까. 아침 시작이 늦고 저녁 마무리도 늦다. 7시 40분, 아침식사를 하러간 호텔 식당 안에 사람 그림자가 없다. 식사를 마치고 일어설 때가 되어서야 음악이 나오는 걸 보니, 스페인의 저녁형인간 규칙을 무시하고 우리가 너무 일렀나. 외출 준비를 하러 다시 객실로 들어오자마자 작은밥돌이 텔레비전을 켠다. TV에선 스페인어 더빙을 덧댄 만화영화 '피카추'가 방영 중. 어젠 '못 말리는 짱구'를 전송해주더니만, 스페인의 TV만화도 절대적으로 일본만화 판이다. 서울의 가을처럼 하늘이 높푸르다. 우선..
스페인 1 : 가우디의 도시 1988년 9월, 캠퍼스엔 서울 올림픽 자원봉사요원의 유니폼을 입은 학생들이 나풀거리고 있었다. 열전을 마무리하는 날, 마지막을 장식하며 장내에 지속적으로 울리는 소리는 낯선 지명인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였다. 서울올림픽 폐막식에서 처음으로 들어본 지명, 1992년 올림픽 개최지인 바르셀로나로 크리스마스 연휴에 기대어 떠난다. 12월 23일, 비행기 출발 시각은 8시 40분. 지난 벨기에행 항공기가 6시 50분 출발이었던 것에 비하면 양반이다. 7시에 도착한 공항은 크리스마스 휴가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로 잔뜩 와글와글거린다. 항공 체크인을 한 다음, 공항 내의 빵집에 들러 아침 위장을 든든히 채우고 곧 탑승을 했다. 작은 항공기는 승객들로 채워지고 건너편 자리의 아이들 및 아저씨와 일행으로 보이는 한..
이탈리아 5 : 피사 그리고 여름 바다 아침, 이탈리아 텔레비전에선 시에나 팔리오 축제를 연습하는 광경을 생방송으로 비춰준다. 말 경주 장면이 활기차면서도 박진감 넘친다. 오늘도 역시나 맑은 날, 아침식사 후 짐을 모조리 다 챙긴 후 기차역으로 향했다. 자동판매기에서 발권한 승차권을 든 우리 앞에, 산타마리아노벨라역을 출발하여 피사를 경유하는 기차가 미리 멈춰선다. 웬일로 이렇게 기차가 빨리 왔을까나. 사실, 한번도 제시각에 출발하거나 대기하고 있는 이탈리아 기차를 탄 적이 없기에 신기하기까지하다. 뭐, 이렇게 횡재하는 날도 있는 거지. 출발까진 시간이 남아있고 승객도 많지 않아 마음에 드는 좌석을 골라 앉았는데, 우리 뒤쪽에 중국인들이 무리지어 앉는 사태가 일어났다. 시끄러워지리라 각오했지만, 다행히 비교적 조용한 말소리나 차림새를 보니 중..
이탈리아 4 : 아주 특별한 시에나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절실히 느낀 점. 생활 물가와 여행객 대상 물가의 차가 가장 큰 나라가 아마도 이탈리아가 아닐까 한다. 이탈리아 관광지에서의 먹거리나 볼거리, 택시 요금은 그들보다 국민소득 높은 나라의 그 요금들을 훨씬 상회하니까. 한마디로 가는 곳마다 엄청난 바가지 요금이 여행객들을 덮어씌우고 있다는 말씀. 아무리 생각해도 어제 저녁, 3분동안 탄 택시요금이 10.9유로라는 건 정말로 말이 안된다. 여름 해가 짧지 않으니 심각히 부산 떨며 서두를 일이 없긴 했다. 오늘의 알람은 제대로 이쁘게 울려준다. 제시간에 일어나 단장하고 7시반, 아침 식탁으로 갔다. 어제 보았던 노부부만 조용히 소근대며 식사를 하고 있을 뿐 식당은 차분한 편이다. 우리가 식사를 하는 사이 한국인인 듯한 젊은 남자 하나가 홀..
이탈리아 3 : 열정과 열정, 두오모 베키오 다리를 건너 걷다보니, 한손엔 포도를, 다른 한손엔 술잔을 올려든 그리스신화 속 디오니소스가 우릴 바라보고 있다. 적당한 근육과 적당한 기럭지를 자랑하는 거리의 주신(酒神)에게서도 르네상스 발상지다운 운치가 느껴진다. 검은 디오니소스를 스친지 오래지 않아 피티 궁전이 등장해 주는데, 정확히 점심시간이다. 일단 피티궁전에서 멀지 않은 식당에서 파스타와 피자로 요기를 하고 다시 피티궁전 앞으로 움직였다. 피티궁전은 15세기, 피렌체의 명문 메디치가에 대항하기 위해 부자상인인 피티가 세우려했으나 완성을 보지 못했고, 그후 결국 메디치가에서 이 건축물을 매입하여 개축을 하였다고 한다. 참말로 인생이란... 궁전 앞의 경사진 광장에 사람들이 비둘기떼와 함께 앉아있다. 우리도 바닥에 엉덩이를 대보는데, 곧 ..
이탈리아 2 : 베키오 다리 위에서 눈을 뜨니 7시 25분. 이상한 일이다, 분명 어제 알람을 확인했는데. 휴대폰을 열어 다시 확인을 해보니 일요일 알람이 해제되어 있다. 불치인 요일착각증이 다시 발병했다. 예정보다 늦었으니 어쩔 수 없다. 이럴 땐 그냥 눈꼽만 떼고 식당으로 바로 돌진해야 한다. 주문 즉시 바로 만들어주는 커피도 맛있고 아침 식사 메뉴도 제법 먹을만하다. 호텔을 나서며 보니, 인사를 건네는 호텔 프론트 직원이 친절하고 훈훈한 남자로 바뀌어있다. 어제 별로 친절하지 않았던 여자 직원은 알바가 분명하다니까~ 외관 전체가 공사 중인 산타마리아노벨라 성당으로 가는 도중, 여기저기서 종소리가 울려퍼진다. 산타마리아노벨라, 산로렌초 성당, 두오모 성당 모두 일요일 아침 미사로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산타마리아노벨라 성당 앞엔 오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