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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13 오사카

1. 13 (일) 전 : 아라시마야의 향기

호텔 조식당

# 복작이는 아침

 

아침 7시, 오늘은 어제보다 훨씬 이른 시각에 조식당으로 향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식당 안이 아주 붐비는데, 한국어와 중국어만이 왁자지껄 내부에 울려퍼진다.

일본 사람들은 그야말로 고요히 밥만 먹느라 일본어는 절대절대 들리지 않는다.

 

식사를 하고 돌아온 객실 텔레비전에선 일본 예능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는데, 우리나라 10-20대가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과

딱 흡사한 모습으로 출연자들이 낄낄거리고 있다. 우리가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증거인지 10대인 아들녀석이 즐겨 시청하는

예능 프로그램은 정말 적응되지 않는다.

물론 예능 프로그램이라 해서 다 외면하거나 배척하는 건 아니다. 단지 몇몇 종류가 나와는 맞지 않는다는 것.

 

8시, 적막이 흐르는 도톤보리를, 이곳저곳을 지나며 천천히 걸어본다.

오늘은 교토 여행을 할 예정인데, 호텔 바로 근처인 니폰바시 역으로 가지 않고, 10분 거리인 난바 역으로 간다.

지하철 노선과 JR, 난카이선이 교차하는 난바 역에서는 교토행 한큐선이 출발하는 우메다역까지 단번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호젠지

도톤보리의 어느 골목엔 옛 모습을 간직한 선술집과 상점이 즐비한 '호젠지 요코초'가 있다.

호젠지 요코초'에 자리한 '호젠지'는 수백 년된 작은 사찰로, 물을 끼얹는 불상이 그 중심을 지키고 있는데,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불상에 물을 끼얹다보니 불상은 일년 내내 늘 푸른 이끼가 낀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호젠지 요코초'를 겨우 발견하여 둘러본 다음, 이국적인 노란 건물의 제과점-프랑스 사람이 운영한다고 했던가-을 지나

난바 역에 거의 도착할 무렵 떠오른 몹쓸 생각.

서울서부터 준비해온 한큐 투어리스트 패스를 호텔 객실 캐리어에 고이 모셔두고 몸만 왔던 것이다.

 

# 그럴 수도 있는 거야

 

그럴 수도 있지 뭐, 그래도 다행이지, 여기서 떠올랐으니, 우메다까지 가서 생각났으면 어쩔 뻔했어.

남편한테 이렇게 박박 우겨놓고는 다시 호텔로 돌아간다. 근데, 자기는 왜 안 챙겼대.

 

캐리어에서 잘 자고 있던 한큐 투어리스트 1일 패스 2장을 조심스레 들고서는 이번엔 니폰바시 역으로 향한다.

갈아타지 않고 단번에 우메다까지 가려고 아까 난바 역으로 걸어갔던 것이구만. 도로나무아미타불이 돼버렸다.

 

한큐선에서

니폰바시 역에서 오사카 원데이패스(주말과 공휴일엔 600엔)를 구입한 우리는 중간에 한번 갈아타는 수고를 하고서야

우메다에 도착했다. 메다에서 교토까지는 한큐 전철을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데, 한큐 투어리스트 1일 패스는 하루

종일 한큐 전철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교통권이다.

 

우리의 교토 여행은 오전엔 아라시마야, 오후엔 청수사와 그 주변을 둘러보는 일정이다.

아라시마야엘 가기 위해서는 가츠라(桂)역에서 아라시마야 행 열차로 갈아타야 한다.

 

오사카와는 달리 고풍스럽고 한적한 교토의 정경이 차창 밖으로 이어지고 있다.

오사카 우메다 역에서 교토행 한큐 급행열차를 탄 우리는 가츠라 역에서 환승을 한 후 아라시마야 역에 무사히 도착했다.

물론 한큐 패스를 호텔로 다시 가지러 가는 바람에 예정보다 한 시간 가량 늦어졌지만 말이다.

 

아라시마야 역

# 여기는 아라시마야

 

아라시마야 역을 나서 왼쪽으로 돌아 걸으면 제일 먼저 눈에 드는 풍경이 도게츠교(渡月橋)다.

달이 건너는 다리라... 참 낭만적이다. 도게츠교는 아라시마야의 시작을 알린다.

 

도게츠교

평화롭고 호젓한 목조 다리인 도게츠교를 조심스럽게 천천히 건넌다.

겨울이라 해도 메마르지 않은 주변 정경이 마음을 편안하게 이끌어 준다. 저기 가는 뒤통수는 누구~

 

여긴 우리나라 경주 같다. 전통과 역사가 그대로 묻어있잖아. 거리에도, 건축물에도, 또 공기에도 말야.

넓지 않은 도로 주변으로 줄 지어 늘어선 건물들엔 그들의 세월이 그대로 담겨있는 듯했다.

 

거리엔 여행객을 대상으로 인력거를 끄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다들 엄청난 팔 근육을 자랑하는 남정네들인데, 우연히 만난 가녀린 여성 인력거꾼이 신기하기만 하다.

 

당고

# 치쿠린, 대나무 숲길

 

이제 어디로 가냐고...

오사카에서도 활약하던 한글 이정표가 아라시마야에서도 딱 나타나주셨다.

한글과 영어, 일본어가 친절하게 병기된 이정표엔 죽림오솔길이라 표시되어있는 치쿠린(竹林)을 향해 걸어간다.

대나무숲 입구에 모여있는 사람들 틈을 뚫고 당고도 두 개나 먹어주시고~

 

끝없이 이어진 대나무들의 숲. 얘네들 키 되게 크네, 근데 얼마나 더 가야 하지. 

어느 정도 대나무 바람을 쏘인 우리는 그 끝이 어딘지 확인해야만 할 의무와 까닭이 없었기에 10여분을 가다가

갔던 길을 다시 되짚어 돌아왔다.

 

# 하루 종일 먹는 것 같아

 

기품 있고 우아한 전통 보존 마을 같은 아라시마야를 놓아주고, 다시 도게츠교를 건너 역으로 가기 직전에 발견한 가게.

사람들이 잔뜩 가게를 가리고 있는 걸 보니 맛있는 가게임이 분명하다. 저 어묵도 먹자고.

 

다시 돌아온 아라시마야 역.

그 공기와 향기를 마음에 담은 채 이젠 교토의 중심, 가와라마치 역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