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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13 오사카

1. 13 (일) 중 : 인파 속 청수사

# 한큐 교토선

 

아라시마야 역을 출발한 열차는 다시 가츠라 역으로 거슬러 간다.

가츠라역에서 우린 아침에 오사카 우메다 역에서 탔던, 즉 한큐 교토선 종점인 가와라마치역까지 운행하는 열차로 갈아탄다.

우메다에서 가츠라를 거쳐 가와라마치역까지 운행하는 노선이 한큐 교토선의 본선이라면 가츠라역에서 아라시마야역까지

운행하는 짧은 노선은 한큐 교토선의 지선인 셈이다.

 

가츠라에서 환승한 가와라마치 행 열차엔 승객이 그득하다.

차창 밖으로는 현대 아닌 과거 어느 시점의 한가하고 고즈넉한 교토가 지나가고 있다.

 

마루가메 제면
야요이켄

교토 가와라마치 역에서 내린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점심식사다.

가와라마치 역에서 멀지 않다고 여겼던 산조거리의 야요이켄을 찾아가기로 했는데, 약도보다 실제 거리는 꽤 멀었다.

야요이켄 가는 도중에 만난 마루가메 제면 앞엔 긴 줄이 기다리고 있고, 그 근처의 스시노무사시 앞에도 많은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 점심 먹기 힘들어

 

겨우 만난 야요이켄~

앗, 기계에서 식권을 뽑아서 주문을 해야 하는데,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우리 뒤로 하나둘씩 사람들이 줄을 서고, 우리 마음은 바빠지지만, 아무도 우리를 채근하지 않는다.

어찌어찌 돈가츠새우정식 식권 2개를 기계로부터 발급받아 직원에게 식권을 내고 자리에 앉았다.

깔끔하고 차분한 분위기에, 세일기간이라 할인된 돈가츠새우정식 맛은 그냥 무난한 정도다.

 

이젠 청수사로 가야 하는데, 이 근처 어디서 버스를 탄담.

괜히 헤매느니, 그냥 우리가 아는 정보대로 다시 가와라마치 역으로 움직여 6번 출구 앞에서 207번 버스를 탔다.

일요일이라 버스 안엔 승객이 어마어마했고, 길은 엄청나게 막혀, 달랑 4정거장 가는 시간이 20분이상 걸렸다.

청수도로 정류장에 도착하니 우리와 같은 목적을 지닌 승객들이 우르르 내린다.

 

청수사 가는 길

많은 여행객들 사이에 끼어 청수사(기요미즈데라)로 향한다.

경사진 길을 오르면서 좌우에 펼쳐진 키 작은 건축물에서 교토스러운, 또 일본스러운 정취를 느껴본다.

사람 구경하는 날, 그 틈으로 유명한 화장품 가게인 '요지야'도 보인다.

 

청수사

# 청수사, 청수사

 

교토의 대표 관광지인 청수사는 778년에 창건된 거대 유명 사찰이다.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물결을 만드는 청수사엔 일본 전통의상을 입은 젊고 어린 여인네들이 많이 보였다.

 

청수사 입구부터 본당 전까지는 무료 입장이지만 본당엔 300엔의 입장료가 필요하다.

본당엔 더 많은 인파가 바글바글, 일요일이라 해도 정말정말 엄청나다.

 

청수사 본당

청수사 본당을 지나 본당의 익숙한 경관을 볼 수 있는 위치에 이르렀다.

절벽 위에 아슬아슬 놓여있는 건축물의 위용에는 세월과 역사, 문화가 어우러져 녹아있다.

 

어마어마한 인파 때문에 상세히 보기도 쉽진 않았지만, 사실 난 절이란 공간에 별 관심이 없다.

아니 좋아하지 않는다.절을 좋아하지 않게 된 이유는 향 때문이다.

특이하면서도 고약한-내 취향이 아니란 의미- 향 냄새 때문에 절이라는 오래된 공간과 문화까지도 외면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절이든 다른 나라 절이든 모두 마찬가지여서 청수사 내부 역시 제대로 살피지 않고 그저 둘러보기만 했던 것이다. 

 

청수사의 샘물은 세 줄기다.

세 줄기는 각각 건강과 재산과 연애운을 상징한다고 하는데, 그 앞에는 저마다의 소원을 기원하는 줄이 길다.

래 기다리는데는 익숙하지 않은 우린, 줄 선 사람들의 즐거운 표정만 즐기기로 했다.

 

# 인파와 함께 한 산넨자카, 이넨자카

 

청수사의 작은 연못 앞엔 청수사 밖 계단길인 산넨자카(産寧板), 이넨자카(二寧板)를 알리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산넨자카와 이넨자카의 가파른 계단길에서 넘어지면 3년 안에, 또 2년 안에 천국으로 간다는, 사실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고 한다. 뭐, 계단이 가파르고 위험하니 조심하라는 의도의 이야기겠지.

 

산넨자카, 이넨자카 주변으로 몇십 년 혹은 몇백 년 된 유서 깊은 식당과 가게들이 여행객들을 불러모은다.

사람들의 뒷모습을 따라가는 길, 가도 가도 끝이 없을 듯한 이 길의 끝엔 무엇이 있을까.

 

산책하기 좋은 교토의 겨울 하늘 아래 참 오래, 또 참 많이도 걸은 것 같다.

아까부터 고단하다는 신호가 오기 시작한 다리를 쉬어주기 위해 계단길의 끝 어느 길모퉁이에 있는 찻집에 들었다.

 

테이블이 4개뿐인 작은 찻집에 앉아 티오레 2잔을 주문했다.

공간 활용이 기막힌 작은 찻집과 이를 운영하는 노부부가 서로 닮아있다. 

공간과 사람의 어울림,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오랜 친구처럼 조화롭다.

20여분을 머물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오사카로 돌아가야 할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