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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22 빈

9월 22일 (목) : 비너 옥토버페스트

Prater

이제 빈도 가을이 무르익고 있다.

1주일 전까지 이어지던 늦여름은 물러나고, 10도 미만 아침 기온과 15-17도의 오후 최고 기온이 당연한 9월 말이 되었다. 

남은 식재료들로 감자조림, 대구오징어조림, 계란프라이 등 아침 식탁을 차린 후 서울 가져갈 것들을 사러 또 Penny엘 다녀왔다.

 

프라터 Kaiserwiese
Kaiserwiese

보름 전에도 왔던 프라터에 S45와 S2를 타고 또 온 이유는 프라터 Kaiser Wiese에서 열리는 옥토버페스트 때문이다.

9월 22일인 오늘부터 10월 9일까지 프라터-놀이공원은 물론 더 넓은 잔디공원이 있음.- 잔디 공원에서 개최되는 축제다.

 

Kaiserwiese

개막일에 맞춰 오전에 도착하니, 준비된 무대에서 축제 관계자들의 인사와 가수들의 공연이 분위기를 돋우고 있다.

맥주를 마시고 식사를 할 수 있는 대형 천막들이 마련되어 있고, 목재로 지은 편안한 분위기의 야외 음식판매점들도 곳곳에 많다.

Goesser, Kaiser 등 맥주 제조회사의 이름과 로고가 새겨져 있는 대형 천막 안에 들어가보니 공간이 어마어마하게 넓다.

평일 오전이라 붐비지 않아 둘러보기 좋은 시간, 대형 천막에도 야외 판매점에도 이미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많았다. 

 

Goesser 맥주

대형 천막 안에서 판매하는 맥주는 뮌헨 옥토버페스트처럼 모두 1L다. 

야외 판매점에선 0.5L 짜리 맥주도 있어서 한 잔 할까 했으나, 다음 행선지의 맥주가 우리를 잡아끌고 있어서 패스.

참, 정확히 확인하진 않으나 축제 기간 중 늦은 오후나 주말엔 맥주 음주에 다른 규정이나 방법이 적용되는 듯했다.

 

Kaiser 맥주

오지 않으려 했으나 올 수밖에 없었던 Strandcafe.

오스트리아에 살던 4년 간의 추억이 담겨있는 곳, 집에서 가까웠고 무엇보다 맛있었기에 지금도 아들이 간절히 그리워하는 곳이다.

그러나 아들의 기억 속 아니 우리들의 기억 속 슈트란트카페는 이미 사라져 남아있지 않다. 

 

슈트란트카페는 2010년대 중반에 확장공사와 리모델링을 했고, 재오픈 후 문제가 생겨 2019년 전후해서 1-2년 문을 닫았다.

이후 코로나19 팬데믹이 찾아왔으며 100년 넘은 이 식당의 주인이 러시아인으로 바뀌었다-시기는 정확히 모름-고 한다. 

그 과정에서 음식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랐으며 맛과 서비스는 예전만 못해서 빈 시민들의 발길이 줄었다고 한다.

 

빈에 살던 2005년~2008년엔 11.90~12.90유로, 선후배와 여행 왔던 2018년엔 18.90유로였던 슈페어립 가격이 지금은 35.90유로다. 

며칠 전 갔던 쉔브룬 근처 식당이나 도이치바그람 식당-9.24방문-에서 제공하는 비슷한 중량의 슈페어립은 19.90~22.90유로였다.

 

Strandcafe

추억의 슈페어립 대신 평일 낮에 서빙되는 점심 메뉴를 먹기로 했다.

음식이 아주 맛이 없더라도 부드바이저 맥주만은 그대로일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서 말이다.

 

몇 년 아니 수십 년 동안 서빙을 하던 낯익은 서버 할아버지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무뚝뚝하고 성의 없는 서버가 던져놓은 맥주는 슈트란트카페만의 부드바이저가 아니었다.

왕관처럼 풍성하게 올려주는 거품도 없이 맛도 엉망이다. 정성과 애정이 빠진 음식은 티가 안 날 수가 없다.

 

Strandcafe

하늘이 모든 걸 다한 날.

점심시간 슈트란트카페가 이렇게나 한적하다니, 아니 한적한 정도가 아니라 손님이 거의 없다.

망가진 슈트란트카페의 현실을 보면 완전히 미련이 사라질 거라던 H아빠 말처럼, 이제 우리에게 슈트란트카페는 없다.

추억 속 슈트란트카페와 무너진 지금의 이 식당은 절대 같은 곳이 아니니까.

 

슈트란트카페 근처 트램 정류장
U1 Kagran역

트램을 타고 Kagarn역으로 돌아와 아들이 3년 4개월간 다녔던 국제학교를 잠시 가보려 했으나 찾을 수가 없다.

찾고 못 찾고 할만한 곳이 아닌데 세상에, 8년 전-아들과 함께 왔던-엔 그림자도 없던 고층 건물들 뒤로 숨어버린 학교.

고층 건물이 완공되고 또 현재 지어지고 있는 이 터는 당시 학교 앞에 있던 드넓은 주차장이었다.

 

지하철과 S-bahn을 타고 숙소로 돌아오는 중 S반 안에서 검표원을 만났다.

빈에서는 자율적으로 U반, S반, 트램 등에 승차하는데, 가끔 검표원이 등장하여 티켓 검사를 한다. 

정해진 기간동안 사용하는 교통권은 티켓에 기간이 명시되어 있어서 U반 앞이나 트램 안에 있는 기계에 펀칭할 필요가 없다.

빈 시민들은 대부분 1년 기간권을 소지하고 있어서 펀칭 없이 승차하는데, 빈 시민들은 다 무임승차를 한다고 오해하는 여행객도 있다.

 

휴식하면서 알아낸 이탈리아 피자를 포장해 오기 위해 숙소를 나서야 했다.

오가는 길이 길었으나 이탈리아 남부에서 먹는 최고의 맛이라 아주 보람차다.

이제 빈을 떠날 시각이 나흘도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