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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04~08)/2004 여름 기억

2004. 8. 11. 수 (내 나라로)

 

잠깐 눈을 붙였다. 자리가 좁고 불편해서 잠을 오래 이룰 수가 없다.
기호는 영화를 보며 싱글거린다. 2번째 영화란다. 기내는 여전히 어둡고 인천까지는 몇 시간 더 가야 한다.

20여일 전, 서울을 떠날 때가 떠오른다.

기호랑만의 긴 비행, 갈아타는 부담감,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
오스트리아에서의 기쁘고 즐거운 날들을 모두 추억에 담고, 이제 우리나라로 가고 있다.
남편은 계속 꿈 속이고, 나도 다시 잠을 청했지만 금세 눈이 떠진다. 그러기를 여러 차례.
세 번째 영화까지 다 시청한 기호가 잠이 들었다. 참 평화롭고 착한 얼굴이다.

곧 도착한다는 기내 방송이 들린다.
안전 벨트를 매고 좌석을 바로 한 다음, 저쪽 좌석 너머 창을 보았다.

짐을 챙겨서 항공기에서 빠져나오는 탑승교가 후끈하다.
우리나라를 떠나있는 동안, 10년 만의 더위로 엄청나게 뜨거웠다더니 벌써 실감이 난다.

입국심사를 거쳐 수화물로 부친 큰 캐리어를 찾아 공항버스 타는 곳으로 나왔다. 숨을 쉴 수 없는 더위다.

집으로 오는 버스 안, 셋 다 정신없이 잠에 빠졌다. 버스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드디어 우리집이다.
청소를 다 해놓았다는, 눈에 익은 엄마의 글씨가 있다. 신문과 우편물을 부탁했던 옆집에 들러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여행은 즐겁다.
여행의 장점을 줄 세우지 않더라도, 여행하는 기쁨 자체만으로도 여행은 충분히 행복하다.

우리는 다른 세상을 보았고 느꼈다. 직접 실감한 저편의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기호에게도 이번 여행이 소중하고 즐거운 기억으로 살아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 짧은 체험이 우리 모두에게 아름다운 삶의 바탕으로 이어질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