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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22 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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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5일 (목) : 오토 바그너의 그림자 어제 안드로메다를 짊어진 채 귀가한 남편은 아직 지구로 귀환하지 못하고 있다. 혼자 카푸치노와 곡물빵-Schwarz Brot-으로 기품 있는 조식을 먹는 기분이 아주 괜찮다. 사실 검은 곡물빵은 즐겨하지 않았는데, 크렘스의 호프브로이하우스에서 이 빵을 먹은 후부턴 아주 좋아졌다. 뒤늦게 기상한 우주인에겐 지구로 돌아올 양식이 필요했다. 서울서 가져온 한국식재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터라 오스트리아 밀가루로 쫀득한 얼큰수제비를 만들었다. Universal 밀가루-이 나라의 가장 흔한 밀가루 3종 중 하나-의 찰기가 엄청나다. 하늘은 흐리고 정오 무렵엔 비까지 쏟아지니 우산을 받치고 Penny와 Billa엘 다녀왔다. 마트 가려고 빈에 왔나 할 정도로 특히 매일 들르는 Penny, 귀국할 때 가져갈 것들을 ..
9월 14일 (수) : 고결한 Volksgarten 10시간이나 숙면하고 기상한 아침 6시, 비가 내린다. 서울서 들고온 즉석밥은 어제 다 소진했기에, 며칠 전 구입한 쌀로 냄비밥을 짓는다. 전기밥솥도, 압력솥도 아닌 일반 냄비에 짓는 밥은 해본 적이 거의 없어, 쉽지 않다. 비가 그친 사이, 구시가로 간다. 알베르티나 미술관 입구 부근에서 보는 구시가 전망은 아주 멋지다. 오페라하우스, 사허 호텔, 카페 모차르트, 여행 인포메이션 센터 그리고 광장과 거리를 메우고 있는 여행객까지. 백인 단체 여행객은 항상 많고, 중국 여행객들도 며칠 새 부쩍 많아졌다. 오랜 만에 구시가에서 쇼핑을 했다. 캐른트너의 Klimt 샵에서 우산을, Tchibo에서 커피 원두를 구입하고 콜마크트 Heindl에선 어여쁜 초콜릿을 골랐다. 왕궁이 끝나는 미하엘러 광장엔 늘 그랬듯 ..
9월 13일 (화) : Wachau 가는 길 화요일 아침, 밖에선 출근하는 발걸음과 승용차 소리가 연이어 들려오고 있다. 마지막 남은 즉석밥에 짜장을 비벼먹고 납작복숭아와 커피까지 먹고 나면 멀리 갈 준비 완료다. 9시 15분, Hernals역에서 S45를 타고 하일리겐슈타트에 내렸다. 오늘 행선지인 크렘스와 뒤른슈타인에 가려면 빈 시내 교통카드 아닌 별도의 기차 티켓이 필요하다. 탑승할 때마다 티켓을 발권하는 방법도 있지만, 2명 이상 움직이는 경우엔 Einfach-Raus-Ticket을 구입하면 경제적이다. 이 기차 티켓은 평일 9시부터, 주말과 휴일은 새벽부터 종일 OEBB의 S, R, Rex 기차를 무제한 이용 가능하며 2인 기준 €35, 인원이 늘어날수록 금액도 몇 유로씩 추가된다. 우린 티켓을 창구에서 구입했는데, 나이 지긋한 직원이 남..
9월 12일 (월) : 빈은 사랑이다 구름이 적당히 흩날리는 맑은 날이다. 빈에 살 때 한번씩 들렀던 가구점 Kika가 숙소 근처에 있어서 신나는 기분 안고 그곳으로 가고 있다. 숙소로부터 800m, 트램이나 버스를 타기 애매한 거리라 천천히 걸어서 오가기로 했다. 역시 평일 오전이라, 깔끔하고 우아한 내부엔 손님이 별로 없다. Kika에서 판매하는 품목은 가구가 가장 많지만, Lutz나 IKEA가 그러하듯 주방용품이나 장식용품도 많다. 여긴 독립된 건물 전체가 Kika 매장이라서 전에 자주 가던 도나우첸트룸 Kika보다 규모가 훨씬 크다. 오, 식당도 있다. 11.9유로의 저렴한 금액으로, 평일 11시부터 14시까지 수프와 샐러드, 메인, 디저트까지 모두 먹을 수 있다. 다양하고 맛있어 보여서 다음에 꼭 와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으나 아쉽..
9월 11일 (일) : 그리움은 빗물처럼 우리 숙소가 있는 건물은 상점 없이 전체가 거주 공간이고, 거실에서 보이는 맞은편 4층 건물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3층 어느 집의 창문이 밤낮없이 항상 열려 있다. 한여름도 아니고, 더구나 며칠 전부터는 밤엔 꽤 쌀쌀해졌기에 밤새 창문을 열어놓고 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밤늦게도, 새벽에도, 아침에도 그 집 창문은 늘 열려 있었다. 오늘 오전에도 어제처럼 구시가로 간다. 물론 어제와 지난 번에 갔던 곳이 아닌 구시가의 다른 지역으로 간다. 빈 구시가는 생각보다 좁지 않다. 트램을 타고 먼저 도착한 곳은 U-bahn 칼스플라츠역 앞이다. 칼스플라츠역 동쪽으로 걸어가본다. 빈에 살 때도 여행왔을 때도 이쪽으로 온 기억은 많지 않다. Albertina Modern은 오페라하우스 뒤편에 있..
9월 10일 (토) : 방랑하는 토요일 생선을 즐기지 않는 내가 빈에 살 때 즐겨 구입한 식재료가 대구 필렛이다. 납작한 직육면체인 이것을 썰어 대구전을 만들어도 좋고, 필렛 통째로 만든 대구 조림은 더 맛있었다. 아침 반찬으로 식탁에 올린 대구 조림은 단연 최고. 완벽한 밥도둑이다. 토요일 아침, 10A 버스로 한 정거장 거리인 Manner 공장의 샵으로 움직인다. 상점 안엔 다양한 Manner 제품이 있었으나 예상보다 내부는 작았으며, 우린 코코넛이 든 초코과자를 골랐다. 마너 공장에서 2번 트램으로 이동한 Burgring. 빈에 살 때 그앞 주차장을 주말마다 애용했던 호프부르크-왕궁 또는 황궁-를 슬쩍 쳐다보고는 미술사 박물관 쪽으로 향했다. 어젠 그제보다 서늘했고, 오늘은 어제보다 기온이 낮은 듯하니 초가을 더위는 차츰 물러가고 있나 ..
9월 9일 (금) : 빈숲 포도밭 사이로 맑지만 살짝 서늘한 아침, 비빔밥과 즉석된장국으로 아침식사-지나치게 잘 먹고사는 중-를 든든히 챙긴 후 카푸치노까지 마셨다. 10시, S-Bahn역인 Hernals로 향한다. 고풍스러운 Hernals역에서 S45-지하철만큼 자주 운행-에 올라 10분 만에 하일리겐슈타트에 도착했다. S-Bahn은 빈 시내와 빈 근교를 운행하는 열차로, OEBB-오스트리아 철도청- 소속이다. 운영 주체는 OEBB지만 빈 교통권을 소지하고 있으면 빈 시내에 한해 추가 요금없이 승차할 수 있다. 빈 지하철인 U-Bahn은 트램, 버스와 함께 Wiener Linien-빈 교통국-에서 운영한다. 하일리겐슈타트역 앞엔 사회 주택의 선구자인 Karl Marx-Hof가 자리하고 있다. 1930년에 완공된 이 건축물은 집 내부를 방, 주..
9월 8일 (목) : 따로 또 같이 어제도 살짝 더웠는데 오늘 빈의 최고 기온이 29도에 이른다고 오스트리아 기상청에서 예보한다. 15년 전 같으면 7월말이나 8월초 한여름에 해당하는 날씨니, 점점 뜨거워지는 지구가 매우 염려스럽다. 날이 더워서인지 이 집이 1층-한국식으론 2층-이라 그런지 집 안에 날파리들이 잡아도 잡아도 날아다닌다. 오늘 오전은 각자 따로 움직이는 일정이다. 남편은 미술사 박물관을 관람-이번이 아마 3번째-하고, 난 그 시각에 숙소 주변 마트를 둘러보기로 했다. 미술사 박물관이야 무궁무진한 예술의 보고이긴 하지만 난 이미 5번 정도 관람했기에 이번엔 제외다. 9시, 남편은 트램을 타러 숙소를 나서고, 난 9시 반에 Penny로 들어섰다. 오픈일이라 예상보다 손님들이 많고, 오픈 기념으로 다양한 상품들을 대대적으로 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