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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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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3 : 오래된 로만틱 점심을 먹고 나온 하이델베르크 거리에 로텐부르크에 본점을 둔, 그러나 어제 로텐부르크에선 미처 들어가보지 못한 크리스마스 상점 캐테 볼파트(Kaete Wohlfahrt)가 있다. 1년 내내 크리스마스 상품을 판매하는 이곳의 내부는 바깥에서 만난 진열장보다 훨씬 더 화려했다. 처음 보는, 크고 작은 갖가지 크리스마스 장식품이 어찌나 많은지 하나하나 예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보기만 해도 기분 좋고 들뜨면서 신나기만 했다. 거실 장식장 한 켠을 장식할 공예품을 사든 채 아직 건너지 못한 네카 강으로 향한다. 하이델베르크 성에서 내려다보였던 폭 좁은 석회빛 강. 네카 강으로 가는 길에 띈 예쁜 간판, 그 상점에선 초콜렛을 판매하고 있었다. 키스처럼 달콤쌈싸름한 초콜렛이라, 아주 적확하고 환상적인 비유다. 네카..
독일 2 : 아, 하이델베르크 5시반, 별안간 눈이 떠졌다. 바깥의 밝은 기운에 이끌려 커튼을 열어보니 지붕이 반투명하게 하얗다. 승용차를 움직일 걱정에 살펴본 도로는 약간 질퍽거릴 뿐 다행히 빙판은 아니다. 밥돌들은 아직 한밤중이고, 어제 꽤나 혹사한 다리는 여전히 뻐근하다. 정말 한해 한해가 다르다는 생각. 잠시 다시 눈을 붙인 뒤 내려간 식당엔 정갈한 아침 식사가 차려져 있다. 커피, 핫초코, 요거트와 과일까지, 덤으로 부활절 달걀까지 깔끔하고 맛있다. 옆 테이블엔 두 가족이 함께 여행 온 듯 8-9명이 식탁에 둘러앉아 있다. 하지만 절대 떠들지 않는 그들.어느 나라 사람일까, 우리의 호기심이 발동한다. 독일어권도 동유럽쪽도 아니고, 생경한 언어와 흰 피부, 큰 키를 힌트 삼아 북유럽인이라 마음대로 결론을 내린다. 거리엔 맛소금..
독일 1 : 성벽 속 중세 마을 미리부터 날씨 걱정을 싸안고 있는 건 역시 쓸데없는 소모전이다. 일기예보 사이트에선 3월말 날씨의 혹독과 변덕을 알리고 있었기에, 비나 눈이 쏟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상황. 생각보다 괜찮은 날씨다. 흐린 아침 7시반, 독일로 향하는 마음은 마냥 하늘을 날 듯하다. 승용차엔 이미 네비게이션이 장착되어 있었고 예약한 로텐부르크 숙소의 주소까지 완벽히 입력되어 있다. 9시 50분, 독일로 들어섰고 고지대인 파사우엔 가느다란 눈발이 날린다. 고속도로 저쪽 너머에 많은 눈이 쌓여있는 걸 보니 며칠 사이 꽤 많은 눈이 내렸나 보다. 대부분의 구간에서 속도 제한이 없는 독일 고속도로는 통행권이 필요 없다고 한다. 한마디로 무료. 뉘른베르크를 지나 길가 휴게소에 차를 세웠다. 파사우에 이어 두번째 휴식인데, ..
봄 맞이 그제부터 서머타임이 시작됐고, 장장 열흘동안 닫혀있던 작은밥돌 학교 교문이 월요일인 어제부터 드디어 열렸다. 게다가 오늘은 그 발음만으로도 상쾌한 4월, 제대로 된 봄이 시작되었다. 날씨도 정말 맑디맑다! 예년보다 빠른 부활절 3일 연휴엔 꿈속에서마저 별렀던 독일 자동차 여행을 떠났었는데, 유럽 전역의 이상 기후 덕에 눈이 펑펑 내리는 등 한겨울 날씨가 완벽히 부활하고 말았다. 물론 그런 것쯤 아랑곳하지 않았고 여행은 즐거웠다. 그리고, 여행을 다녀온 후 남겨진 과제는 며칠 안 남은 작은밥돌의 방학동안 유지되어야 할 '모자 간의 평화'였다. 쌀쌀한 바깥 바람에도 함께 거리를 쏘다니고, 가끔 당근도 던져주는 피눈물 노력으로 평화는 무사히 지속되었다. 이렇게 오래도록 조용했던 건 정말 오랜만이었던 것 같다...
스페인 5 : 고딕지구 거닐기 떠나야 하는 겨울 아침이 아쉬움으로 채워진다. 호텔 체크아웃을 하기 전, 어제 다 둘러보지 못했던 고딕 지구로 간다. 고딕 지구의 어느 좁은 골목길, 손때 묻고 삶도 배어있는 담벽에 기대어서면 잠자던 어린 시절 추억들이 슬며시 굴러나올 것만 같다. 스페인 말라가에서 태어나 바르셀로나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피카소의 미술관도 이 고딕지구에 있다. 벽면에 적힌 휴관일과 내 휴대폰 속 달력을 맞추어보곤 피카소와는 말라가에서 만날 것을 기약한다. 어제에 이어 휴일인 오늘, 고딕 지구엔 고요하고 잔잔한 걸음 소리만 가끔 들릴 뿐. 닫힌 문 가린 셔터에 그려진 예술가적 그림과 발코니의 독특한 조형물은 거리 분위기를 한결 로맨틱하게 한다. 호텔로 돌아와 짐을 꾸렸다. 공항에서 중심가로 왔던 길과는 다른 방법으로 공항으로..
스페인 4 : 포트벨에서 7시 50분, 아침식사를 하러 간 호텔 식당이 굳게 닫혀 있다. 공휴일 조식시간은 8시부터라 했으니 우리가 쓸데없이 일찍 가긴 했다. 뭐, 별 수 없이 다시 객실로 돌아왔다가 잠시 후 다시 들어간 식당엔 직원 말곤 아무도 없다. 그런데, 빵을 접시에 담고 커피를 들고 자리에 앉았을 즈음, 갑자기 식당 안이 소란스러워진다. 아이 둘은 실내를 뛰어다니고 남녀 어른의 목소리는 중국인처럼 성량이 풍부하다. 수세미 머리에 슬리퍼와 낡은 체육복 차림, 게다가 그들이 가고 난 후 탁자에 수북히 남은 음식들. 여행을 하며 일본인들의 이런 행태를 보았던 건 처음이다. 아침 위장을 채웠으니 바쁠 것 있나, 오늘은 좀 천천히 움직여볼까. 9시반, 크리스마스 아침은 지하철도, 거리도 모두 평온하고 한산하다. 그래도 얼마나 다..
스페인 3 : 세상에서 가장 긴 벤치 몬세라트에서 바르셀로나로 되돌아온 시각은 해가 서녘으로 한참 기울었을 때였다. 역에서 내려 지하철을 다시 타고, 어제에 이어 가우디의 흔적을 찾아 구엘 공원으로 간다. 지하철에서부터 공원까지 가는 길의 경사가 만만치 않다 싶었는데, 우리를 구원하려 나타난 그것의 정체는... 어라, 야외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였다. 유럽 어느 도시에서도 보지 못했던 야외 에스컬레이터 타는 재미가 퍽이나 신난다. 앞서 타며 내게 손 흔드는 작은밥돌. 그런데 비가 오면 관리를 어찌한다지, 전기가 자동 차단되나. 구엘 공원은 가우디의 후원자였던 구엘이 투자하여 가우디의 설계로 언덕 위에 세운 공원으로, 20세기초에 완성된 공간이다. 우리가 입장한 방향은 공원의 후문 쪽이었는데 공원에 발을 딛자마자 첫인사를 나눠준 것은 세상에나,..
스페인 2 : 몬세라트 아침 7시, 커튼을 제치고 베란다에 나가보니 새벽 어둠이 가시지 않은 하늘엔 보름달만 둥그렇게 떠 있다. 호텔 뒤편에 위치한 바르셀로나 시민들의 집 대부분은 아직 점등 전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저녁형 인간이라 해야 할까. 아침 시작이 늦고 저녁 마무리도 늦다. 7시 40분, 아침식사를 하러간 호텔 식당 안에 사람 그림자가 없다. 식사를 마치고 일어설 때가 되어서야 음악이 나오는 걸 보니, 스페인의 저녁형인간 규칙을 무시하고 우리가 너무 일렀나. 외출 준비를 하러 다시 객실로 들어오자마자 작은밥돌이 텔레비전을 켠다. TV에선 스페인어 더빙을 덧댄 만화영화 '피카추'가 방영 중. 어젠 '못 말리는 짱구'를 전송해주더니만, 스페인의 TV만화도 절대적으로 일본만화 판이다. 서울의 가을처럼 하늘이 높푸르다. 우선..